...만약 감정이 반사나 소화 작용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완전히 통제 가능하다면 옷장에서 셔츠를 고르듯 감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감정이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고, 또 감정이 그 스펙트럼의 어디쯤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색다른 예를 제시한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사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이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은 바이올린의 활과 현을 만들 때 쓰는 재료에 대한 언급인데, 활은 말의 털로 현은 동물의 창자로 만든다(실제로는 고양이가 아니라, 가축의 창자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사실’ 고양이 창자에 말총을 긁는 것일까? 뭔가를 ‘사실대로’ 기술하는 유일한 방법이 물질적 원인을 파악하거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에세』는 체계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 될 수도 있다. 몽테뉴는 주제 간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제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또한 몽테뉴는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수의 에세이가 그냥 끝나 버리고 독자는 요점이 뭔지 궁금해진다. 그중 일부는 의도적인데, 몽테뉴는 독자들이 자신의 견해에 지나치게 안주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달을 만들어서 "나는 판단을 삼간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페코epecho를 새겨 넣기까지 했다....
..오웰의 요점은 성인이 되려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성을 덜어 내면 소중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릴랄이 옳고 간디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릴랄의 우선순위가 옳고 간디의 우선순위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좋은 인간이 되길 원할 뿐이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좋은 인간이 되는 게 성인이 되는 것보다 낫다.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 아니다. 성인이 실패한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그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부 대상에 중요성을 부여하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가 내 정신 상태를 결정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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