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
...알리시아는 섬세한 후각을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엄마나 아빠는 아니다. 어쨌거나 그 순간 셀리아에게서는 금방 껍질을 벗긴 감자 냄새가 났다. 식물이라기보다는 식품에 가까운 냄새였다.

47~48p.
...그날 오후를 생각할 때마다 새록새록 생겨나는 느낌, 자기들 같은 여자아이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요로운 삶을 목격한 일에 대해 회상하는 메일이었다. 학기 내내 알리시아가 셀리아에게 불러일으킨 부러움의 감정, 후드티에 바지를 맞춰 입는 거로 만족해야 했던 자기들에 비해 값비싼 상·하의 운동복을 입었던 아이. 그리고 또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낀 안도감.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와 이모, 숙제를 막 끝마친 동생과 사촌들, 한밤중처럼 블라인드를 내린 채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할머니를 보았을 때 느낀 그 편안함, 그리고 이모와 사촌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문을 닫는 소리를 들었을 때, 좀 더 후에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카센터에서 일을 마치고 기름 얼룩투성이로 돌아온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끌어안은 바람에 셔츠가 더러워졌던 일. 처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셀리아가 보낸 그 메일의 제목은 <불가사의Wonders>. 겉보기에 그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었다.

150p.
...아빠가 보고 싶긴 해요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건 결코 살아보지 못한 그 무언가,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어떤 삶이죠. 일할 필요도 없고, 냉장고는 가득 차 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할 그런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 아마도 내가 그리워하는 건 아빠도 아니고, 아빠와 함께하던 삶도 아니고, 아빠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이미지, 그리고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158p.
...영화에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으면 금세 이어붙인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개연성 없는 행동,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법하지 않은 방향으로 줄거리가 흘러가는 걸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199p.
...어린 시절 알리시아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밖을 내다보려고 거실 정중앙에 앉아있곤 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건 예고 없이 닥치는 재난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애들 놀이나 같은 반 친구들과의 소풍, 직장에서 돌아온 어른들, 그런 데는 끼고 싶지도 않았다. 필요한 건 오로지 최소한의 공간. 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두 발이 들어갈 만한 딱 그 정도의 공간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누구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현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렇게 일생이 흘러가기를 바랬다....

232p.
...지금까지 겪은 그 모든 일이 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모두, 처음부터,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전부? 예를 들어 오늘,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거실 불을 켠 것까지? 이 코딱지만한 집을 빌린 것. 자신의 소파, 자신의 책장, 자신의 텔레비전, 전부? 마리아는 잠시 쉬려고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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