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p. ..7일 만에 막을 내린 쇼와 64년은 새로 찾아온 헤이세이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기루 같은 해였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범인은 그 쇼와 마지막 해에 일곱 살 소녀를 유괴, 살해한 뒤 헤이세이의 새로운 세상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64는 맹세와 다짐의 기호였다. 이 사건은 헤이세이 원년의 사건이 아니다. 반드시 범인을 쇼와 64년으로 데려와 무릎을 꿇리겠다.
133p. ..뇌는 팔다리와 상의하지 않는다. 팔을 움직이고 싶으면 팔에다, 다리를 움직이고 싶으면 다리에다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227p. ..‘자네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만나러 가겠네.‘
288p. ...취조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얄팍한 평면도처럼 보였던 피의자가 어떤 순간을 계기로 깊이와 두께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바뀐다. 종업원과 다른 점은 변화의 순간을 가져오는 게 내연남의 변덕스러운 태도가 아니라 취조관의 계산된 한마디라는 점이다.
319p. ..영혼까지 팔아넘긴 건 아닙니다. 그 뒷말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제 진심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 쳇바퀴 돌듯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그때의 감정에 휩쓸려 형사와 경무 사이를 오가는 것은 자기애와 가족애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수라장으로 되돌아가는 걸 뜻한다.
338p.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직업이지.‘ ..형사라는 직업은 인생에서 투명 망토 같은 역할을 한다. 오사카베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편한 직업이 아니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형사의 애환과 고뇌는 과잉 공급된 소설과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형사라고 말하면 상대는 어련히 알아듣는다.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게다가 형사는 현실의 고생도, 고뇌도, 슬픔도 쉽게 뒷전으로 미뤄둘 수 있다. 항상 쫓아야 할 사냥감이 있는 까닭이다. 일선 경찰서에 있을 때 마쓰오카는 이런 말로 부하들을 다독였다. "불평하지 말고 즐겨라. 우리는 사냥도 하고 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
461p. .."주인장의 말로는 사고 당일 메이카와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며칠 전에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자동응답기에 불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메시지도 녹음되어 있지 않았다. 최근에는 판촉 전화나 잘못 걸린 전화도 오지 않아서, 전화벨이 울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옛날 전화기라 발신자 표시 기능도 없었다. 누굴까? 누가 전화했을까?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은 그 모습이 전에 없이 기뻐 보였다고 했다." ..본인에게는 중요한 일. 적힌 모든 내용이 그러했다.
571p.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면 노트를 넘기는 소리조차 박력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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