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존재는 죽음을 통해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교육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좋게도 나쁘게도.

..손전등 라이트를 켠 예거는 빛에 비추어 보이는 풍경에 그만 깜짝 놀랐다. 트럭이 정차한 좁은 길은 터널이 되어 있었다. 좌우의 정글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가 저 멀리까지 아치를 형성하고 있었다. 문명사회의 일원이었던 예거는 인식의 전환을 받아들였다. 도로 양쪽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깊고 광대한 숲 속에 인간이라는 작은 동물이 만든 짐승의 길이 사라질 듯 말 듯 가느다란 선이 되어 가까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목의 바다가 예거의 패기를 빨아들이려 했다. 밀림에는 이쪽의 패기를 꺾어 버리는 마력이 잠들어 있었다. 여기는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않는 독립된 세계이며, 옷을 몸에 두르고 직립보행으로 행동하는 동물은 따돌림 당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이 있는 공간을 걷고 있다 보면 향수병과 비슷한 허전함이 마음속에 쇄도했다.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 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플로레스 원인만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나 북경원인도, 멸망한 인류종에게는 마지막 하나 남은 개체가 있었을 터였다. 그 사람은 의식과 감정이 있고, 자기가 놓인 상황을 이해할 능력도 있었다. 그 아니면 그녀는, 어느 순간 깨달았을 거다. 자기가 있는 세상을 아무리 찾아도 동료가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만약 이곳에 기자가 있었다면 학살 현장을 문장으로 적고 있으리라. 그 기사가 읽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에 대한 소망을 싹트게 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을 보고 싶은 엽기적인 취향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고 저열한 오락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학살자들과 똑같은 생물종이면서도 자기만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입으로만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만족을 느낄 터였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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