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p. .."저 애는 이렇게 말하곤 해. 태양의 빛은 너무 강해서 견딜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대. 한겨울의 태양이라도 마찬가지래." .."나도 저녁형 인간이라 알 것 같아. 달빛이 창가에 비쳐 들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는 그건가." .."아니야. 달빛은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게 아니라, 그 신비한 힘으로 속박하는 거야. 인간은 달의 작용으로 광기에 몰린다고 믿고 있는걸."
144p. .."정답. 과학수사라는 건 미스터리에 있어서 암적인 존재지. 혈액 응고 상태를 근거로 사망 시각을 산출해내려는 말도 안 되는 연구를 하는 대학도 있다나 봐. 그런 방법을 고안해 내면 수십 퍼센트의 알리바이 트릭이 무효가 돼. 우주개발이 달과 화성 생명체의 존재를 부정해서 SF 작가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166p. .."인간의 의식에는 ‘수면‘과 ‘깨어 있는 상태‘와 ‘자각‘의 세 단계가 있는데, 상황에 휘둘려 자유가 없는 현재의 인간은 단지 깨어만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는 거야. 아리스가 지금, 나는 깨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주관적인 자각이지 객관적인 자각이 아니야. ‘자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이 하나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어. 그는 은자, 승려, 요가의 세 가지 길을 승화시킨 네 번째 길이 인간을 자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지." .."음. 그런데 에가미 선배가 요가를 했던가요?" ..에가미 선배는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껄껄 웃었다. 육체의 그늘진 부분에 성감대가 있듯이 사고의 그늘에도 그러한 것이 있어서, 내가 지금 에가미 선배의 그 부분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다.
167p. "..그는 몽상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어. 예술에도 주관적인 예술과 객관적인 예술이 있어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푹 빠지게 만들 뿐인 피상적이고 주관적인 것 따위는 예술이라 부를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지. 예를 들어 쳐다만 봐도 감상자의 눈을 멀게 하는 그림, 연주만 해도 물을 동결시키는 음악, 낭독만 해도 벽을 무너뜨리는 시처럼, 물리적인 힘을 가진 예술이야말로 객관적인 예술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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