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p. (해제 中)
..복지야말로 질문의 전환이 가장 시급한 영역이다. 우리는 ‘복지(welfare)‘라는 명명에서 사전적 정의대로 안녕, 행복, 건강을 떠올리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 의존성‘을 비난할 채비를 서두른다. 빈곤 통치의 역사란 인간에게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지식과 제도를 구축해 온 과정이다 보니 멀쩡한 노동자라면 복지 수급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는 통념이 똬리를 틀었다....

121p.
..착취는 숱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것의 가치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을 때 노동착취를 경험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구입하는 것의 가치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할 때 소비자 착취를 경험한다. 우리에게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원이 없을 때 우리의 경제적 자유가 제한된다. 우리에게 재산이나 신용이 없을 때는 그게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러면 착취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 다른 사람의 불운은 나의 행운이므로, 누군가가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을 때 우리는 그들의 처분에 맡겨진다.

142p.
...우리 사회의 많은 요소는 기능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어떤 이들에게 주택은 재산을 증식시켜 주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재산을 탕진시킨다. 어떤 이들에게 신용에 대한 접근은 금융 권력을 강화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금융 권력을 망가뜨린다....

173~174p.
..우리 대부분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백인이거나,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를 두거나, 연줄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것도 알고있다. 우리는 자수성가는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는 걸, 근성과 극기 정신으로 각고의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괜찮은 충고이지만 그걸로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청난 부유함 바로 옆에 가난이 존재하는 한, 승자들은 이런 모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지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거라고. 복지가 장기적인 의존성을 만들어 낸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건 사회주의와 독재로 이어지는 파멸 행위라고. 이런 선동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서로 맞물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낡은 비유와 고정관념은 수명이 다해 가고 있다. 우리는 그 속을 이미 간파했다. 오늘날 민주당원 대부분과 공화당원 대다수가 가난이 노동윤리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부당한 환경 때문이라고 믿는다.

182~183p.
...그의 주요 관심은 민간의 부가 학교, 공원,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같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상당한 속도로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과정은 서서히 시작되다가 어느 순간 자체적인 탄력이 붙어서 가속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축적하면 할수록 공공재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그러면 공공재를 유지하는 데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사람들이 세금 감면 혜택 등의 수단을 통해 원하는 바를 손에 넣으면 공공재는 방치되어 악화하는 반면 개인의 부는 커져 간다. 공공주택, 공교육, 대중교통이 점점 부실해질수록, 그것은 점점, 그러다가 거의 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된다.

195~196p.
..부유한 백인 자유주의자들이 주로 지지하는 진보적인 정책들은 그들의 부에 실제적인 위협을 전혀 가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민권운동 기간 동안 백인 엘리트들이 공원과 공설 수영장의 인종 분리 철폐를 지지했던 것은 어차피 자기들은 그 공간을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사적인 클럽이 있으니까. 이는 백인 노동계급의 분노를 샀고 성난 백인 노동계급은 인종 분리 철폐를 "부자를 뺀 나머지 모든 사람의 통합"이라고 불렀다....

225p.
...아무리 암담한 시기라도 우리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상상하고 거기에 경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현 상황에 대한 불만과 그것의 비영구성이 모두 드러나므로. "우리는 그것이 현실적인지 실제적인지 성공 가능한지가 아니라 그것이 상상 가능한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부르그먼은 썼다. "우리의 의식과 상상력이" 기존 질서에 "너무 공격당하고 포섭되어서 대안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용기나 힘을 빼앗긴 건 아닌지를 질문해야 한다".

278p.
..여기에는 중대한 사회학적 통찰이 있다. 발밑의 땅이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피기보다는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에 더 마음을 쏟으며 방어적인 태도로 우리 것을 지키려고 한다. 숱한 사회심리학적 증거에 따르면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다고 또는 부족해질 수 있다고 느낄 때, 우리의 지위(또는 우리가 속한 인종 집단의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고 느낄 때 타인의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다....

291~292p.
..한마디로 빈곤이 사라지면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빈곤을 종식시키는 데 진심인 나라는 진정으로, 강박적으로 자유에 헌신하는 나라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옳았다.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궁핍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빈곤에 포위된 나라는 자유국가가 아니다. 은행 계좌가 좌우하는 자유—부자들의 자유—에 비해 공동의 책임, 공동의 목적과 성취, 공동의 풍요와 헌신에서 비롯되는 자유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 해방이라는 인상을 준다. 더 깊이 있고 따뜻하고 풍성한. 이런 종류의 자유는 로빈 월 킴머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것은 당신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든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다". 어째서일까? 빈곤은 어디에 있든 모든 곳의 번영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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