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p.
...그리그의 매력은 어린아이 같은 매력, 흠씬 얻어맞고 결국 다리를 절게 된 어린아이의 매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어른들의 사회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해 오두막에서 나와 함께 어린아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49p.
...사상, 그것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상들 따위는 곧장 치워 버려. 철학하려고 하지 마. 이론을 만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이쪽으로 끌고 오지 말라고. 너는 조류학자가 아니야. 너는 새야. 그러니 노래를 불러. 물론 그걸 요구한 사람은 없지만. 네 가시덤불로 돌아가.

72p.
...나는 도망치는 일이 가져다주는 끝없는 쾌락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었다. 도망치는 것, 그것은 소설가로서 나의 기저를 이루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나는 여우 꼬리에 매달리듯 도망치는 일에 매달렸다. 고대 프랑스어 guerpir에 접두사 de가 붙은 형태의 단어 déguerpir는 ‘포기하다‘라는 의미이다. 독일어로는 ‘던지다‘라는 의미를 가진 werfen이며, 스웨덴어로는 verpa, 고트어로는 vairpan, 왈롱어로는diwerpi, 프로방스어로는 degurpir이다. 나는 이 단어 위에 나 자신을 세웠다. 있을 법하지 않은 어떤 공간 때문에 다른 공간을 억지로 포기하는 일. 이번에 그 공간은 부아바니였다. 우리는 책 상자들과 암탕나귀 한 마리와 함께 이듬해 봄에 그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곳에 적응했다. 그리그는 곧바로 지붕 아래에 서재를 꾸몄고, 창문은 그의 책들로 완전히 막혀 버렸다. 내 방 창문에서는 지척의 초원이 바라다보였다.

79p.
..분명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감동과 살아남으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원초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 진하면서도 미묘하며, 가벼우면서도 과묵한 충실함을 영원히 경험하려는 욕망, 최소한의 타자성도 없이 나를 둘러싼 환희에 찬 것이나 전율하는 것 안에 거하려는 욕망 말이다. 그렇다, 하지만 나를 보았다는 이유로, 내게서 인간의 속성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새의 날갯짓이 갑자기 분주해지고 빨라지는 것은 뭐라고 묘사하지? 공포? 나는 단번에 둘로 분열되어, 도망가는 동시에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126p.
...올가을 들어 어느 저녁엔 이런 생각이들기도 했다. 나는 나이 드는 걸 받아들이고 있어. 아무렴, 나는 노화를 겪고 있고 그 여파로 몸이 망가졌지. 하지만 노화에 어울리는 미지의 영역도 내 것이 되었잖아! 나는 그걸 놓치고 있었다. 미지의 영역을 잊어선 안 돼. 나는 내 앞에 놓인 미지의 영역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고, 이제 노화는 일종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일로 다가왔다. 그런 식으로 나는 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146p.
..물론 지식은 필요하다. 바깥에서 돌아오면 나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서 사온 가이드북을 펼쳤다. 그런 다음 사물들이 가진 원래의 이름을 찾아 주었다. 그것은 미지의 구역을 탐험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노화 대책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점은 더 당기고, 시선은 더 정확하게.

243p.
..사람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삶의 끝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그는 『신학 대전』에서 답했다. 시쿠트 팔레아라고. 그는 이 두 단어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말한 것이다. 그것은 귀리 껍질과도 같은 것이다. 씨앗은 없고 그걸 싸고 있는 것, 날려 흩어지는 것.

268p.
..얼마간 망각하고 있던,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 관해 생각해 보니, 내가 논리적이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때때로 내게 인간이란 나의 형제들이자 버림받고 굶주린 존재, 몸에 구멍이 뚫리고 불에 타고 고문당한 존재, 창문에서 떨어지고 처형당하고 톱과 음악으로 몸이 잘린 불쌍한 우리들이었다. 또 때로는 사악한 약탈자이자 강탈자, 살인자, 전투복을 입은 용병, 착취자였다. 나는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모두 물리친 율리시스처럼 그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율리시스가 그들을 물리친 것처럼 그들 전부를. 그 전부라니, 상상할 수 없다. 모두 물리친 가운데, 제비 한 마리만 곁을 지키고 있다. 아주 작은 제비 한 마리. 세상의 현실과 신화들을 알고 있었다면, 그 제비가 날아가는 모습이 당겨진 활 모양이며 그것이 아테나 여신을 상징한다는 걸 알았으리라. 하나의 권력. 나무 한 그루로 만든 활은 권력을 드러낸다. 나무의 분노로 깎아 만들어진 사물에도 권력이 깃들어 있다. 게다가 모든 현실이 분노에 싸여 있다. 어마어마한 분노가 우리 종을 덮어 버렸다....

271p.
..무엇으로 변화된단 말인가?
..인간의 모습과 다른 것으로 변화된다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가족과 재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상실을 원한다. 극단적인 상실을. 세상에 그처럼 강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은 존재가 지닌 매혹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나는 우주의 수프로 변화되는 편을 택할 것이다.
..나를 수프로 변화시켜 주기를!

309p.
...내 손은 이제 손가락 다섯 개가 아니라 다섯 손가락 사이의 네 개의 공간이었다. 마치, 걸을 때가 아니어도 내 몸이 이미 나무 속 여러 겹의 속껍질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371p.
...그래서 어느 날 밤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게 된다면, 잠에서 깬 나는 둘 중 누가 죽었는지, 죽은 게 당신인지 예스인지 알려고 하지 않을 거야. 모르고 있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나는 살아남은 쪽의 온기만 붙들고 그것이 세상인 것처럼 놓지 않을 거야....

376~377p.
..내 책상에 개를 데려왔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와 동시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글을 쓰는 건 타인이나 후손을 위해,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서나 영원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몸짓의 아름다움이나 우리가 겪은 상실을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단지 언어에 불법점거당했으므로 글을 쓴다. 이것은 나에게 자명해 보였고, 거드름 피울 일도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개집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개에게 속한 개집. 그 개는 내가 아니고,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말하는 것, ‘로고스‘라 불리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 단어들의 기저에서 말을 하고, 그것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배하는 건 그것이다. 성서적이다. 그 단어들의 기저에서 독백하는 자에게 대항해 할 일이 있을까? 누가 우리를 이용하는가? 우리를 길들이는가? 말하기 위해서만 말하는 자에게 대항하여? 그의 다변에 대항하여? 우리가 과연 그 단어들의 기저, 우리 안에서 독백하는 언어의 개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답할 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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