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p. ..피사체와 사랑에 빠져서도 안 된다. 거기 넋을 놓고 있다가는 사랑하는 피사체를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다. 핀이 나가거나 노출이 맞지 않게 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그 유명한 금언을 패러디해 말하자면, 사랑하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그르치게 되니 이때의 피사체는 당신이 사랑하던 그 피사체가 아니게 된다.
233p.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청담동이나 회기동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이나 명동 롯데백화점에 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즉각 판단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시장이오, 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238p.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술도 여행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술은 맛이 변해버린다. 아니, 맛은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본래 술을 둘러싸고 있던 그 무언가가 달라져버린다....
240~241p. ...거품이 맥주 그 자체를 대신하는 것, 꽃꽂이가 꽃 그 자체를 대신하는 것, 수집벽이 그 물건의 가치를 초과하는 것, 그런 일종의 전도야말로 일본 문화의 특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인이라는 존재가 필요해진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숙련, 무가치한 초과, 장인은 그 모든 것의 ‘거품‘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눈부신 잉여이다.
294. ...막상 비너스포트 안에 들어가면 이 모든 게 허상임을 알면서도 그 안에 머물고 싶어진다. 오후 5시에 하늘의 빛이 바뀌고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도 나는 전해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컴의 프리킥에 알면서도 당하듯, 예고된 환상도 이렇게 처절할 때는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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