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사로잡힌 나를 아내는 결코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옛날 여자인지라 이래저래 나를 돌봐주었다. 매사에 의지가 되던 아내를 잃고 나는 황야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죽음의 황야에서 나 혼자 그 옛날 전쟁터 섬의 기억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패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애초에 싸우기를 포기하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기 위해 황야를 홀로 떠도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문 모를 노인네가 되는 것이 가장 편리할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 황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옛날에 그 섬에서 범한 죄 따위는 전쟁터의 잔재가 뒤죽박죽 뒤엉킨 머릿속 어딘가에 매몰되어 잊어버릴 수 있다. 죄의식으로 고통받을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