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p. .."그러면 온갖 일들이 모두 정해지고 더 커지잖아. 그러기에는 아직 일러. 지금은 먼지 하나 일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일 수밖에 없는 때야. 조심, 조심, 숨죽이고. 크게 움직이면 목숨이 축나."
55p. ..엄마가 마음에서 우러나 끓여 주는 커피가 얼마나 진하고 뜨겁고 향기롭고 맛있는지를 알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엄마는 의무에 따라 습관적으로 나를 대하고 돌보았는데, 지금은 다르다. 함께 마시고 싶어서 맛있게 끓인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64~65p. .."하루 시간의 흐름이, 저녁때가 되기 전에 갑자기 길어졌다가 해가 저물면 또 갑자기 빨라지잖니. 그 감각을 요즘 겨우 되찾았어. 이제는 매일 느낄 수 있어. 시간이 점점 늘어나 찹쌀떡처럼 주욱 늘어졌다가 확 빨라지는 경계를 알겠어.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날마다 되풀이되는데도 싫증나지 않아..."
84p. ..이 세상에는 그렇게 늘려 가는 힘과 줄여 가는 힘이 같은 분량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분량은 같은데, 줄여 가는 힘 쪽이 크게 느껴진다는 것도.
164p.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 생뚱맞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미 그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한 자신에게 놀란다. 들은 바로 그 순간, 적응한 부분이 생겨난다. 그리고 점점 자라난다. 어떤 일에든 그렇다.
178p. ..도시에 살다 보면 점차 인식이 흐려지는 것 중에는 개인이 가진 힘의 크기도 있다. ..커다란 빌딩 안에 있는 대형 서점에도 간판 점원은 있을 테고, 그 점원이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면 모두들 허전해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금방 새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메우고 서점은 평소대로 운영된다. 도시 사람들은 일이 그렇게 돌아가야 안심한다.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회사도 망하지 않고 거리도그대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만으로는 어딘가 미진하게 느끼는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다. ..나는 요즘에야, 특히 아빠가 죽고 아빠네 밴드가 해체된 후에야, 개인의 힘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없어지면 끝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오래가기는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는 것에 대해서. 그래서 지금 음미하고 경험하고 싶다고 절감하게 되는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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