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하고 다르거나 좀 나은 점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거의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 경험치와 레벨에 비례한 능력값이 딱 떨어지게 수치화되어 있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므로, 체력과 정신력이 현재 몇 퍼센트 남았는지, 얼마나 쉬어야 완전히 회복되는지 같은 것은 당연히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나의 한계다.

..자려고 누웠더니 눈물이 났다. 똑바로 눕는 것이 어색했다. 경아가 입관할 때의 이미지를 뇌리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돌아누우면 돌아눕는 대로 눈물이 오른쪽, 왼쪽으로 흘러내렸다. 뒤척이는 기색이 옆방까지 들렸는지 벽에서 쿵쿵 주먹질 소리가 났다.
..미친년이 또 지랄이네.
..늘 하던 것처럼 속으로 욕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이런 것이 일상이겠지, 또는 이런 것이 일상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똑바로 누웠다.

...어찌어찌 사람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사람으로서의 본질적인 기능,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상실된 것 같은 느낌을 가누어가며 부랴부랴 카페를 빠져나왔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교회에 간 엄마와 경아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가끔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어느 날 예수가 그 자매의 집에 방문했는데, 언니인 마르타가 예수와 다른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동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 앞에 앉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이리와서 언니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예수는 오히려 마르타를 나무라며, 마리아가 지금 하는 일이 마르타 당신의 일보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던가. 그런 식이다. 신데렐라의, 콩쥐의, 마리아의 자매는 나쁜 사람으로 기록된다. 선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르고 시샘이 많은 자매가 있다. 그렇다고들 한다.

..경아가 보내준 사진들을 생각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최후를 맞을까 자문하게 되곤 했다. 대단히 영예롭거나 기억할 만한 죽음 같은 건 상상하기도 어렵고 딱히 끌리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평범한 시체가 되는 일에도 사실은 상당한 운이 필요했다. 재수가 없으면 끔찍하게, 우스꽝스럽게, 원치 않는 장소에서 믿을 수 없이 민망한 상태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대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자주,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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