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4p.
..그럼 그런 방향감각은 어떻게 하면 체득할 수 있을까? 요는 문장 운운은 나중 일이고, 어찌됐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여자를 꼬드길 것인가, 어떻게 싸움을 할 것인가, 초밥집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런 것들 말입니다.
..한차례 그런 일들을 겪어보고 ‘쳇, 뭐야, 이 정도면 굳이 글 같은 걸 쓸 필요도 없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고, ‘그래도 아직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잘 쓰고 못 쓰고는 제쳐놓고—그때는 이미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을 쓸 수 있게 된 상태다.

79p.
..요즘 세상에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과거에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던 만큼, 요즘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염려스럽다.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116~117p.
..내가 어째서 이 별것 아닌 문장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색깔의 조화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우선 로멜 장군의 빳빳한 남색 서지 군복, 흰색 테이블클로스, 막 튀겨낸 옅은 갈색의 비프커틀릿, 버터에 가볍게 볶은 누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북프랑스의 푸른 전원 풍경—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며 언뜻언뜻 떠오른 것이 그런 색깔들의 어울림이었다. 그렇기에 이렇다 할 의미도 없는 그 문장이 언제까지고 머리 한구석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장의 미덕이라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문장 말입니다.
..가령 소설 같은 걸 쓸 때는, 이렇게 열린 문장으로 시작하면 이야기가 점점 확대되어간다. 반대로 아무리 공을 들인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게 닫힌 문장이면 얘기는 거기서 그만 멈추고 만다.

122p.
..식당칸에는 왠지 ‘일시적인 제도‘라고나 할 만한 독특한 분위기가 떠다닌다. 즉 식당칸에서의 식사는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을 음미하기‘ 위한 식사도 아니다. 우리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불분명하고 잠정적인 식욕을 품고 식당칸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어디론가 확실하게 옮겨져간다. 애달프게 보면 애달프기도 하다.

275p.
..때때로 혼자서 토론을 하며 즐기곤 한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 꼬리가 있는 편이 좋은가 아닌가‘ 하는 주제를 놓고 꼬리 지지파 A와 꼬리 배척파 B를 차례차례 연기한다. 그래보면 인간의 의견 혹은 사상 같은 것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임기응변적인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불분명함과 임기응변적인 부분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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