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 허나 꿈을 꿀 때면, 땀에 흠뻑 젖고는 놀라서 깬다. 이럴 때는 곧장 다시금 잠을 청하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의 무방비한 마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길몽도 흉몽도 꾸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지난 퇴적층으로부터 굳게 다져진 공포가 계속해서 나를 휘감았다. 그 꿈은 내가 겪어봤을 법한 것보다 훨씬 비극적인, 더 잘 짜여진 구성을 하고 있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그 꿈속의 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에메렌츠는 헤라클레이토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옮긴이)를 배우지는 않았으나,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사라져버린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내 얼굴 어딘가에 드리워진 고향 집의 그늘을, 그리고 잃어버린 한때의 내 집을 찾아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떠나온 고향을 오갔다. 물론 물방울들 사이에서 내 인생의 조각들이 휘말려버린 그 강은 이미 굽이져 흘러버렸으니 그곳에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에메렌츠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현명했는데, 과거를 위해 미래에 그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해두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인지하는 것은 아직 요원했다.

...에메렌츠는 몸을 정결하게 한 후 옷만 바꿔 입었지 절대 눕는 경우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침대가 없었고, ‘연인들의 의자’라고 불리는 작은 소파, 그 안락의자에서 선잠을 잤다. 누울 때면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머리에 떠오르기에 그녀는 오직 앉은 채 적당히 아픈 허리를 기댈 뿐이었다. 누우면 현기증이 나니까 침대는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네안데르계곡의 원시인이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잡은 들소를 집으로 끌고 왔으나, 사냥의 경험을 나눌 누군가도 없고 그 사냥감을 보여줄, 자신의 상처들을 보여줄 그 누군가가 없음을 처음으로 경험했을 그때, 그는 분명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으리라....

..그녀는 구석으로 몸을 돌렸다. 중요한 일인 경우 에메렌츠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유가 있든 없든 나는 알 수 없겠지만, 누군가 그날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은 분명했다. 모든 것에는 논리적이고 단순한 설명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에메렌츠만은 그 논리적이고 단순한 설명의 해석에 있어서 나와 달랐다. 다른 어떤 사람들도 감을 잡지 못한 것을 그녀는 단 1초 만에 파악하는 만큼, 반대로 그만큼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았다....

..또다시 한참이 지난 후 내 삶의 가장 비현실적인 순간들 중 한때인, 망자가 된 에메렌츠의 삶의 흔적들을 훑어보고 있었을 때, 얼굴 없이 아름다운 신체 형태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그 옷걸이 마네킹을 정원의 풀밭에서 보았었다.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우기 전에, 나는 거기에서 세속을 가르는 에메렌츠의 성스러운 벽화를 보게 되었다. 그로스만 가족, 남편, 비올라, 총경, 조카, 빵집주인과 변호사의 아들, 그리고 반짝이는 금발에 머리 장식을 한 채 하녀 복장을 입고 팔에는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있던 그녀, 젊은 에메렌츠. 우리들 모두의 사진이 옷걸이 마네킹의 가슴에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비올라는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마치 내 속에 감히 에메렌츠에게 가고자 하는 그 정도의 용기가 있는지, 내 결정의 배경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우리는 어쨌든 창작의 평온함만을 확보하고자 하는 그 정도만은 아닌지, 또는 이렇게 에메렌츠를 찾는 것으로 그녀의 인간적 존엄에 대한 의무를 내가 각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런 인간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반反인텔리주의자, 그러니까 에메렌츠가 언젠가 그 자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고, 이 표현을 알거나 사용했을 법도 했으나 그랬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반인텔리주의자, 그녀가 바로 그랬다. 에메렌츠는 반인텔리주의자였으며, 그녀의 의식 속에서 오직 그녀의 감정들만 가끔씩 예외를 행했다. 이른바 물렁한 양반 세상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독특하게 형성되었는데,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을 수행하지 않고 타인이 그 일을 대신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즉시 인텔리겐치아로 인정되었다....

..사람들이 그 암소를 잡아서 고기 근을 매겼어요. 도살하고 토막 내는 광경을 나에게 끝까지 보여주었어요. 내 느낌이 어땠는지는 묻지 마세요. 누구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사랑하지 말라는 교훈을 당신이 얻었으면 해요. 슬퍼하게 될 거예요. 지금 바로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의 그 누군가를 도륙할 일도 없을 것이고, 그 대상 또한 열차에서 어디로 뛰쳐나갈 필요가 없겠지요....

...에메렌츠는 관대하고 좋은 사람, 기꺼이 자기 것을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부정하지만, 행동으로 하느님을 존경하며 헌신적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강제해야 하는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이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해도 중요치 않다. 에메렌츠의 훌륭한 점은 바로 이 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나는 단지 그렇게 교육을 받았을 뿐이며, 일정한 윤리적 표준을 염두에 두고서 나중에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에메렌츠가 이 주제에 관해 한마디 말도 않고서, 내가 신앙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불교의 한 종류이며 전통에 대한 존중일 뿐이라는 것을 나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윤리 또한 단지 훈육이며 어린 시절 집안에서, 내가 다닌 학교들에서, 지금의 가정에서, 그리고 나 자신이 부여한 훈련의 결과일 뿐임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성금요일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언가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더 적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 에메렌츠는 이미 그녀 자신도, 자신의 고양이들도 다른 누구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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