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생양이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되는 쪽을 택하겠다.

..나는 폭압에 익숙해졌다. 집에서의 학대가 일상생활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몰랐다. 계속해서 경계하는 것이 나의 일반적인 행동이 되었고, 미친 소리 같지만 이런 상황이 편안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계속된 스트레스가 내 정신과 감각, 감정의 형태를 다듬었다. 이 가족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사용한 대응 기제가 내가 아는 전부가 되었다. 그게 나 자신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 내 체계가 사라지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변호사 선서식에 소냐 언니와 헤라르트 오빠, 엄마를 초대했다. 엄마는 딸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아들이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었다. 엄마는 법의 올바른 쪽에 또 다른 자식을 두게 되었다. 내가 우리 가족 내에서 선과 악의 균형을 복구해준 것 같았고, 엄마가 그런 기분을 느끼게 돼서 나도 기뻤다.

..내가 남자아이였으면 딱 오빠처럼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폭력과 허세에 빠지는 걸 막아주었던 건 내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대신에 내가 내 지적 능력을 사용해서 비슷한 삶을 걷는 것을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로 태어났다는 우연을 갖고 내가 어떻게 오빠를 비난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과연 오빠한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빠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꽤나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 애가 일어서서 옷가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를 간직해둬야겠어요. 엄마 냄새가 묻어 있는 물건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놔야겠어요. 그러면 최소한 엄마가 더 이상 여기 안 계셔도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요."
..내 심장이 부서졌다. 이런 삶이라니. 죽음은 나에게 포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엄청난 슬픔을 남겨두고 가야 했다.

..데 분커르 법원까지 나를 데리고 갈 호송 차량에 타기 전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흥분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어린 시절의 생존 기제를 일깨우고 압도적인 상황에서 어릴 때 내가 하던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 눈 뒤쪽에’ 앉았다. 물리적으로는 여기에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내 몸을 떠나 먼 곳에서 쳐다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 몸 안의 감정이 약화되고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음을 갈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사는 게 아니었다.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밖에 나갈 때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빠는 다시는 바깥에 나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근본적으로 우린 둘 다 이미 죽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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