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그 자체를 즐기자.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살자.
..눈을 감고 상상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태양빛, 청결한 마룻바닥, 고급 소파와 단정한 커피 테이블, 그리고 창가에 장식한 꽃.
..빨간 베네치아 글라스 꽃병은 앞으로도 소중히 사용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리려고 했다. 볼때마다 사토시가 떠올라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렇게 멀지 않은 어느 날, 사토시를 떠올리지 않고 또 다른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깨끗한 거실에서 정성껏 우린 홍차를 마시자.
..혼자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성인 여자가 되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결심하고 눈을 반짝 떴을 때, 열어둔 창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진짜지. 너는 분명히 뭔가 이루어 낼 인간이야. 이 할아비는 안다."
..비장의 무기인 이 마법의 말은 사실 근거라곤 없지만, 사람의 미래는 모르니까 꼭 거짓말이라곤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말이 평생 마음을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생각이 비뚤어져서 시간을 낭비하던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애들과는 달라. 뭔가 네 손에 꼭 움켜쥘 날이 올 거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어머니에게 화를 냈지만, 내심 기뻤다.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인생에 희망을 본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뱃속이 따뜻해진다.
..힐끔 보니 하루토의 뺨도 살짝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루토의 몸을 칭칭 동여맨 ‘어차피 나 같은 것‘이라는 실이 아주 조금이라도 풀렸다면 좋으련만.......

.."이해해요. 전쟁 전에 태어나신 분들은 대부분 그러시거든요.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정리를 지도하면 정말 힘들어요. 필요 없는 줄 알면서도 버리기 싫다는 생각이 강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에게 줘서 정리한다는 생각 말고는 하지 못하세요.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은 대체로 다른 사람 역시 필요 없다는 것까지는 잘 모르시죠. 어르신, 제가 도와드릴게요. 전화번호부를 빌려주실래요?"

..옛날 사람은 어땠을까? 도마리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는 영양 상태도 위생 상태도 좋지 않고 약도 없어서 아이가 많이 죽는 시대였다. 그렇게 예전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지금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장수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의학도 발달해서 병도 치료할 수 있다. 그런 현대에 사는 우리는 예전보다 상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아닐까.
..선인들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한편으로 시대 불문하고 아이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예전에는 아이가 많이 죽었으니까 여러 사람이 상실감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다들 괴롭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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