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쇼우쩌手澤’라는 말이 있고, 일본에 ‘나레慣’라는 말이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에 사람이 손을 대어서, 한군데를 반들반들하게 만지는 사이에, 자연적으로 기름이 스며들게 되는 광택을 이르는 것으로, 바꿔 말하면 손때임에 틀림없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풍류는 추운 것’인 동시에 ‘때 묻은 것’이라는 경구도 성립한다. 어쨌든 우리들이 좋아하는 ‘아치雅致’라는 것 속에는 어느 정도 불결한 동시에 비위생적인 분자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서양인은 때를 송두리째 벗겨내 없애려고 하는 데 반해, 동양인은 그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그대로 미화한다고, 억지스러운 말이 되겠지만, 숙명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때나 그을음이나 비바람의 더러움이 붙어 있는 것, 내지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색조나 광택을 사랑하고, 그런 건물이나 가구 가운데 살자면 기묘하게 마음이 풀리고 신경이 편안해진다....

...사실 다다미방의 미는 전적으로 그늘의 농담에 따라 생겨난 것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중류계급 이상의 여자는 절대로 외출하는 경우도 없었고, 가령 가마에 깊숙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면, 대개는 저 어두운 집과 대지의 한켠에 낮게 깔려서, 낮이건 밤이건 오직 어둠에 온몸을 묻고 그 얼굴만을 존재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상 따위도 남자의 것은 현재보다 더 화려한 데 반해 여자의 것은 그 정도는 아니다. 옛날 바쿠후 시대, 시내에서 장사하는 집의 딸이나 부인들은 놀랄 만큼 수수한데, 그것은 요컨대 의상이라는 것이 어두움의 일부분, 어둠과 얼굴과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검게 물들이는 화장법이 행해진 것도, 그 목적을 생각하면, 얼굴 이외의 빈틈을 모두 어둠으로 채워 버리려고 입 안까지 검게 한 것은 아닐까....

...마침 내가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눈썹을 깎고 이를 검게 한 삼십 대의 하녀가, 큰 장지 앞에 촛대를 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다다미 두 장 정도로 밝기가 한정된 장지 뒤편에는 천장에서 막 떨어질 것 같은 높고 짙은 오직 한 가지 색의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미덥지 못한 촛불이 그 두께를 뚫을 수 없어 검은 벽에 맞닥뜨린 것처럼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 었다. 여러분은 이런 ‘등불에 밝혀진 어둠’의 색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밤길의 어둠과는 어딘가 다른 것이어서, 가령 한 알 한 알이 무지개색의 반짝임을 지닌, 미세한 재 같은 미립자가 충만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이 눈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여 무의식중에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잠만 자는 것은 독이다’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음식의 양을 줄이고 종류를 줄이면, 그것만으로 전염병 같은 위험에 걸리는 경우도 적다. 칼로리다 비타민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시간이나 신경을 쓰는 사이에, 아무것도 안하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다. 세상에는 ‘게으른 자의 철학’이 있듯이, ‘게으른 자의 건강법’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개 현대의 도시인은 진짜 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도시인이 아니라도, 요즈음은 꽤나 변방의 시골 거리라도 은방울 모양의 꽃등이 꾸며진 세상이므로, 차차 어둠의 영토는 내몰려서, 사람들은 모두 밤의 암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교토의 어둠을 걸으면서, 이것이 진짜 밤이었던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밤의 어둠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 기억나지 않는 행등의 밝음 아래서 자던 무렵의 밤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쓸쓸하고, 섬뜩하고, 따분한 것이었던가를 떠올리고, 이상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은 《겐지 모노가타리》 이하 옛 소설에 나타나는 부인의 성격이 여기든 저기든 하나같아서 개성을 나타내지 못하였다고 공격하겠지만, 옛날의 남자는 부인의 개성 때문에 사랑한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여자의 얼굴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에 홀렸던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달은 항상 같은 달인 것처럼, ‘여자’도 영원히 단 하나의 ‘여자’였을 것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소리를 듣고, 옷 냄새를 맡고, 머리카락에 대고, 요염한 촉감을 손으로 더듬어 느끼고, 그래도 밤이 밝으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바의 그런 것들을 여자라고 생각하였으리라.

...촌티 나는 것이 싫은 나는 자연 서생티 나는 것도 싫어서, 어느 정도 말하기에 족하다 생각하는 상대가 아닌 한에, 좀처럼 문학론이나 예술론 따위로 싸우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나에게는, 문학자는 붕당을 만들 필요가 없다, 될 수 있는 한 고립해 있는 쪽이 좋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인데, 이 신념은 지금까지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나가이 가후 씨를 경모하는 것은, 가후 씨가 고립주의로 일관했던 실행자였고, 가후 씨만큼 철저히 이 주의를 밀고 나간 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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