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은 잠깐이지만 불편은 그 물건을 쓰는 내내 계속되는 거야." ..그 말은 오래도록 남아 물건을 살 때 기준점 중 하나가 되어주었다.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을 구입하거나, 그것을 도저히 살 수 없다면 소비를 다음으로 미루는 게 맞다. 여기서 포인트는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사는 것. 내 허리가 아무리 예민해도 오바마 부부가 쓴다는 수입 매트리스를 고려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한 어른들은 고모의 삶에 대해 넘겨짚거나 평가하기를 좋아했다. 돈을 아껴 쓸 줄 모른다고, 애를 안 낳아봐서 공감 능력이 없다고, 저래 보여도 속으론 엄청 외로울 거라고. 결혼과 철듦을 연상시키는 것은 진부한 레퍼토리였다. 자신들 역시 늘 어른스럽거나 합리적이진 않았는데도 고모의 행동을 비혼의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영영 어떤 종류의 행복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취급하는 시선 역시 존재했다. 하지만 어린 내가 보기엔 그건 결혼한 쪽도 마찬가지였다. 고모에게서 묻어나는 자유로움과 여유를 나의 부모님에게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자식 키우느라 등골 빠지게 고생한 탓일 테다. 가정을 가지며 새로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있는 만큼 혼자 삶을 꾸림으로써 만끽하는 가뿐함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비혼의 롤모델이 필요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의 소유자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여성.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가정이 아닌 다른 즐거움으로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가는 어른 여성이 많아야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가 더욱 다양한 삶을 상상할 수 있다. 결혼 없는 인생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나의 고모를 떠올린 것처럼.
..나는 그들의 집에 가서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이야기를 들으며 찔렸던 행동은 더더욱. 어떤 이의 생활의 불문율을 인정하고 지키는 것 역시 그를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내 기준에서 너무 유난이거나 세심할지라도 말이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후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불안감 없이 오랜 시간 살 수 있는 집, 지금보다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정책이 향하는 곳은 한정적이고, 그것은 가끔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라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고 싶으면 신혼부부가 되라는 식으로 말이다.
..유명한 다이어트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어차피 다 아는 맛이다." ..사람들은 반박한다. 다 아는 맛이니까 먹고 싶은 거라고. 즐거움도 비슷하다. 뻔히 아는 즐거움이기 때문에 생각나고, 고된 날엔 특히 그립다. 고민이나 탐색 없이 곧장 기분을 전환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보장된 즐거움만을 찾는 날이 반복되면 이 역시 하나의 루틴처럼 지루해지는 순간이 온다. ‘인생 노잼 시기’가 도래하는 이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안온한 시간만큼이나 즐거운 긴장감 역시 삶에는 꼭 필요하다.
.."건강상의 문제로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가게들은 문을 활짝 열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앞에 발이 묶인 채 서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한 세계가 끝나가는 과정을 지켜본 느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세계가 본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끝나버린 장면을.
..일상은 발견과 기쁨의 촉수를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여행지에서 훨씬 행복하다.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유독 기분 좋게 기억되는 여행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힌트를 얻으면 된다. 거기서 무엇을 했기에 행복했는지, 그 순간을 어떻게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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