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디너인가 보죠?" ..병에 하얀 망을 씌우면서 아저씨가 웃었다. 굳이 디너라고 말하는 장난기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면이 있는 사람이 좋다. 나이를 먹었든 어리든, 남자든 여자든.
..참고로 이 필터란, 생각을 그대로 말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해주는 필터다. 필터에 걸러져 세상 밖으로 나와도 좋다고 판단한 생각만 말로 표현한다. 속으로는 ‘바보 같아’라고 생각하면서도 ‘독특하네’라고 어느 정도 부드럽게 변환해서 출력해주는 편리한 필터인데, 좀 취했다고 기능하지 않으면 문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술을 마실 때는 신중해야겠다. .."나이를 먹었을 뿐이야." ..자신에게는 애초에 그런 필터가 없다고 웃으면서 카에데 씨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냉장고로 갔다. .."어렸을 때 아줌마들은 왜 말을 함부로 할까 싶었는데, 유미코가 말한 것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필터의 역할을 내팽개친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들었어."
..내가 아닌 사람의 체온을 느끼거나, 귀엽다고 속삭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한때는 달콤한 과자다. 과자로는 배를 채우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배를 채우지 못하기에 과자를 먹고 싶다. 이 과자는 아마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술에 취하지 않은 엄마는 아주 가끔 면도칼을 휘둘렀다. 자기 몸에 상처를 낼 때도 있었고 내게 휘두를 때도 있었다. 좁은 집에 같이 살다 보니 어디까지가 자기 몸이고 어디서부터가 딸의 몸인지 분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바보 같다고 생각하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나는 웃었다.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바보 같은 짓은 한결같이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왕자님을 원하지 않는다. 시즈 씨는 원한다. 원하는 것이 다를 뿐인데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다.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원하는 것을 원할 권리가 있다. 얻으려고 할 권리가 있다. ..나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삶은 분명 아름답지 않다. 수도 없이 틀리고 남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고, 과거에 저지른 죄와 부정을 불에 태워 용서를 받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옳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게 산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을 가치 없다고 비웃거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