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은 후로 남자, 특히 중년 이상의 남자가 너무 무서웠고, 줄곧 그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그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올라 어느덧 소위 ‘여우짓’이라는 갑옷을 몸에 걸치게 됐다. 중년 이상의 남자와 마주할 때만 걸치는 갑옷이지만, 그 덕분에 득을 볼 때도 적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며 나이 많은 남자에게는 귀여움과 비호를 받았다. 회사원 시절도 마찬가지였고 프리랜서가 된 후에도 ‘여우짓’의 갑옷은 크게 유용했다. 같은 여자들이 그걸 나쁘게 보고 뒷말을 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이렇듯 처음 보는 편의점 점원에게까지 무의식적으로 아양을 떨 만큼, 여우짓은 호흡처럼 살아가기 위한 생리현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때 좀 더 의심해야 했다. 애당초 스스무의 말이 적중한 적은 거의 없으니까. 그럴듯한 소리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리와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추어 적당한 말을 꺼내놓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을 곧이듣다가 뼈아픈 경험을 몇 번이나 했으면서 질리지도 않고 계속 듣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스스무는 상대방이 바라는 말을 해줄 뿐이리라. 그러므로 그 말을 들으면 뭔가 면죄부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