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떠났고, 저는 몇 시간 동안이나 해방의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그러면서 줄곧 바샤라트가 한 말이 얼마나 옳았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알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등장인물인 동시에 관객이고, 우리는 바로 그 이야기를 살아감으로써 그것이 전해주는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우주는 엄청난 양의 공기가 비축된 데서 시작됐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욕구와 고찰은 우리의 우주가 점진적으로 내쉬는 숨에 의해 생성된 소용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내쉼이 끝날 때까지, 나의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단순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정신은 스스로 발달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야생화된 인간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정신은, 무관심 속에서도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이다. 만약 그렇다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도 너나없이 훌륭하게 자랄 것이다. 정신이 그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다른 정신들에 의한 교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교화야말로 데릭이 마르코와 폴로에게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애나는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한다. 동물과의 비非성적인 관계는 정상으로 보면서 왜 성적인 관계는 그럴 수가 없을까. 동물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한정된 동의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데, 왜 그들과 섹스를 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것일까. 이번에도 애나는 개인적인 불쾌감에 근거하지 않은 반박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불쾌감이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깨끗이 용서하고 모두 잊어버려라"라는 말도 있듯이 이상화된 우리의 관대한 자아에게는 그런 충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이 두 행위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용서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어느 정도 망각을 해야 한다. 과거의 심적 고통을 더 이상 생생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유발한 행위를 용서하기도 더 쉬워지고, 그 결과 해당 기억 자체가 덜 중요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의 당신을 격분케 했던 악행도 반추의 거울에 비춰 보면 용서할 만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심리적 피드백 고리가 존재한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잊어버릴 수 있죠? 우리 모두 종이 없이 지금 이렇게 말을 나누고 있는데요." .."설교는 대화와는 달라." 모스비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난 최대한 좋은 설교를 하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을 잊어버리진 않겠지만, 그 말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잊어버릴 수 있거든. 미리 써놓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단지 기억을 위해서만은 아니야. 글을 쓰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죠?" .."좋은 질문이야. 묘하게 들리지?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돼. 내가 온 곳에는 이런 말이 있어. 베르바 볼란트, 스크립타 마넨트. 티브어로는 ‘입에서 나온 말은 날아가버리지만, 글로 쓴 말은 여전히 남는다‘라는 뜻이 되겠군. 무슨 뜻인지 알겠어?"
..지징기는 글 쓰는 연습을 계속했고, 점차 모스비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됐다. 글이란 단지 누군가가 한 말을 기록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글은 입밖에 내서 말을 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단어들 또한 단순한 말 조각이 아니었다. 단어들은 생각의 조각이었다. 그것들을 옮겨 적으면 생각을 벽돌처럼 잡고 다른 배열들 속에 끼워넣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단지 말을 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단 보고 나면, 그것들을 개선시켜 더 강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세부 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만약 모든 사람이 모든 사건을 기억한다면, 개개인 사이의 차이 또한 깎여나가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자아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방범 카메라가 기록한 무편집 영상이 영화가 될 수 없듯이, 완벽한 기억이 절로 이야기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사실로 입증된 기적은 딱 하나, 천지창조뿐이며, 우리 인간 모두가 그 기적으로부터 정확하게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세속적 합의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진리의 탐구만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과학은 의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줄곧 진리와 의도가 동일한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에드거 앨런 포는 단순히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경향을 ‘비뚤어진 임프’라고 표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심술궂은 악마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만약 당신이 잘못 받은 거스름돈을 언제나 돌려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지금 행동은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영향을 끼칠 거예요..."
...어떤 개인의 성격이 그가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라면, 그와 비슷하게 그 개인의 성격은 그가 여러 세계에서 해온 선택들에 의해 밝혀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여러 개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명의 마르틴 루터들을 조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교회의 권위에 거역하지 않은 루터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까지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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