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갈색 머리의 꺽다리와 굽은 등의 작다리가 내게 최후의 펀치를 날린다. 그러고는 갑자기 떠나갔다. 곧 둘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상의, 밍밍한 문장들. 이런 사실은 내게 상처를 줬다. 그들이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보다 나는 그들의 삶에서 덜 중요했으니까. 나는 생각과 고뇌 전부 다를 그들에게 쏟아붓는다, 그것도 눈 뜨자마자. 그토록 재빨리 나를 잊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속이 상했다.

..몇 년 후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평전을 읽다가,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려 잔뜩 성이 난 여자들이 1789년에 베르사유로 몰려가서 항의를 하던 중에도 군주가 모습을 드러내자 자연스럽게 국왕전하 만세!라고 외치는 장면을 기술한 대목에서, 내가 유년기를 보낸 마을의 주민들과 특히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리라. 권력에의 전적인 복종과 항시적 항거 사이에서 찢긴 ─ 그들 대신에 발언을 해왔던 ─ 그들의 육신.

...어머니가 하는 말들이 일관적이지 않거나 모순적인 게 아니며, 일종의 전향자의 오만함으로 내가 믿는 가치들과 ─ 나의 부모, 나의 가족에 반해서 나를 구축해 나가면서 획득하게 됐던 가치들 ─ 양립이 더 잘되는 또 다른 논리성을 어머니에게 강제하려고 들었던 것은 바로 나였고, 특정 언설과 실천을 생산해 내는 논리들을 재구성해 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일관성이 결여된 것임을 깨닫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수많은 언설들이 어머니를 가로질러 지나갔고, 그러한 언설들이 어머니를 통해 말을 했고,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어머니 스스로도 말해 왔듯이 어쨌든 난관을 헤치고 빠져나와 잘생긴 아이들을 낳아 놨다는 자부심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했으며, 이 두 종류의 언설은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됐다.

...사촌은 할머니에게 외출 허가 기간 동안 느꼈던 행복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누구라도 그만큼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라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모든 것이 서로가 맺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결핍이나 모욕을 겪어 보지 않고 안락함만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삶을 살아 보지 못한 셈이었다.

...마치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이 전부를, 가족도 친구도 일자리도 포기해 버리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이제 더는 믿지 않기로 선택하듯이.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삶을 더는 믿지 않기로 선택하듯이....

...죄악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이다. 특히 겉모습이다.

..나는 갑자기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머니의 말이 겨우 들렸을 뿐. 아니, 저 미친놈 뭐 하는 거야?
..그들 곁에 있고 싶지 않았고, 나는 이 순간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거부했다. 나는 이미 그들로부터 멀어졌고, 이제부터 더 이상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 편지가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들판으로 달아나서 밤이 깊도록 한참을 걸었다. 북쪽 지방의 선선함, 흙길, 1년 중 그맘때면 몹시 강하게 풍겨 오는 유채 냄새.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새로 시작될 내 삶을 계획하느라 밤을 오롯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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