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p. ..‘청춘‘ 이란 지난 뒤에도 어딘가 가까이 있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41p. ..현관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밝고 명랑하게 인사를 했다. 밝고 명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은 처세이며 방어다. 잘 모르는 곳에 있을 때는 타인이 친절을 베풀도록 행동하는것이 최고다.
46p. ..나는 ‘다양한 생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 왠지 무척 좋다. 어째서일까, 왠지 안심이 된다.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공존해서 좋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진기한 사슴 ‘콘‘도 포함된다. 그런 하치조지마의 여름 여행이었다.
51p. ..아니, 그러나 만족, 대만족. ‘어떤 음식일까?‘ 상상했던 것을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62p.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어째서 이렇게 재미있을까?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기분 좋은 걸까. 자, 이거나 먹어라, 같은....... 아니면 단순히 먹는 걸 보는 것은 흐뭇하니까?
62~63p.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언제나의 일상이다. 어제는 미야기 현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에 곧잘 일어난 그 감각과 비슷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의내 자리로 돌아와서 조금 있다 보면, ..‘어? 나 방금 화장실에 갔었는데, 화장실 갔을 때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어.‘ ..곧잘 그렇게 느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지만, 뭔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97p. ..공룡이란 게 정말 있었구나. ..그걸 지금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관내 전시물에 이런 한 구절이 있었다. .."양식 있는 과학자는 그 가설이 옳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라,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는다." ..몇 번이나 검증함으로써 증명해가는 세계.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에는 깃털이 있었다!‘ ..최근 그런 설이 부상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연구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이 고스란히 뒤집어지는 일도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차에 흔들리며 돌아왔다.
121p. ..한없이 넓은 모래사장에 서 있으니 지구도 행성의 하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구상에 사람뿐이니, 가끔은 이런 걸 느껴보는 것도 좋다.
153p. ...좀 전에 마리메코에서 산 머플러가 아주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산 것을 바로 사용하거나 바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째서일까. 낭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166p. ..호텔에서 카페까지 걸어서 20분 이상 걸렸을까. 도중에 통근 통학하는 사람들과 스쳐지날 때마다 이국땅에 덩그러니 있는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 어른이 되었구나. ..그렇게 느낄 때, 어린 시절의 기분이 후욱 되살아났다. 헬싱키 골목을 걸으면서 나는 엄마 심부름으로 이웃 빵집에 가 있는 어린 내가 되었다. ..특별히 낯을 가리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심부름을 시키면 언제나 조금 긴장했다. 어른들의 ‘구조‘ 속에 있는 자신이 당혹스러웠던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내가 돈을 낸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이다. 그런데 내 것처럼 어른에게 건네고 물건을 산다. 그 행위가 몹시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부끄러워할 일은 없어, 라고 어른은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아이대로의 이론이 있다.
177p. ..아까 그 남자. 취해서, 백화점 지하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일본인 중년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결혼반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건 오른손이었다. 그는 한번도 "같이 바에 가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이 싫어서 말하지 못한 게 아닐까. ..몹시 쓸쓸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에 대해서가 아니라 뭔가 더 큰 것을 향한 쓸쓸함이었다. 인생이라든가, 시간이라든가, 생사라든가, 그런 것.
186p. ..멈춰서서 그 집단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발견했다. 혼자 있는 아이. 어느 그룹과도 섞이지 못했다. 사슴도, 나라공원도, 예쁜 노을도, 토산품 가게도, 그 아이에게는 상관없는 것들이 아닐까. 이 일정을 무난히 넘기는 것만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빨리 ‘어른‘이라는 장소로 도망쳐 오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에게, 그녀에게 빔을 보냈다. 어른이 되면 좀 자유롭단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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