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p.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태어난 이후 불과 몇 년의 시간 안에 일어난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에게 이미 그 기억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기가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 시기에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안정적 토대가 마련되며, 이때 받은 상처는 이러한 토대가 생성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제한해서 많은 사람의 인생에 긴 그림자를 남긴다.

28p.
..비유하자면 쇼크 트라우마는 아주 잘 직조된 카펫에 색이 다른 실 딱 하나가 섞여 있는 것이지만 발달 트라우마는 너무나 많은 실이 섞여 있는 것과 같다.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실을 뽑아내야 해서 결국 카펫의 형태와 색이 변하고 만다.

65p.
..아기들은 이런 고통을 피하려고 자신의 몸에서 멀어지고 삶의 에너지를 정신적인 세계에 쏟는다. 이런 보호 메커니즘 때문에 육체화가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만약 이 고통이 심각한 경우라면 아이의 정신은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되고 이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은 여리고 창백하고, 꿈을 많이 꾸고 상상의 세계에 살고 있어서 눈에 바로 띈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이 된 뒤에도 세상을 ‘혼자서 안갯속을 걸어가는 느낌‘,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느낌‘ 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느낌‘ 등으로 묘사한다. 이들은 대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고민에 대해 몇 시간씩 상담을 받아도 그것만으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발달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심리치료를 받고도 실패한 이력을 안고 있다. 심리치료사 중에서도 몸을 중심으로 심리를 해석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74p.
..어린 시절의 상처가 강한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차원보다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사고한다. 그런 만큼 민감하고 세심한 사람이 많다. 이때 문제는 자신의 몸 안에 살지 않고 몸 밖에서 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것은 설명하기 상당히 어려운 현상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의 공간, 어떤 영역에 둘러싸여 있다. 평소에는 이것을 의식하지 못해도 누군가 불쑥 이 영역을 침범하면 곧바로 알아차린다. 그런데 몸 안에 살지 않고 외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이 공간이 광범위하게 확장된다.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침범했다고 느끼는 범위 자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넓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스트레스 감지 시스템은 거의 지속적으로 경보 태세에 있다. 안전 반경이 너무 넓어서 거의 쉴 새 없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107p.
..자기효능감을 배우는 시기는 아이가 모든 일에 ‘네‘라고 답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되는 시기와 겹친다. ‘아니오‘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 나에게 신체 심리치료를 해준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155p.
..긍정적인 말과 친절한 대접을 받았을 때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시선을 돌린다. 상대방의 말을 거부하면서 잠깐의 해리 상태가 발생한다. 칭찬이 내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애를 쓰면서 나름대로는 자신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163p.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명제가 약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뭔가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지적인 인지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식은 긴 변화의 첫 번째 발걸음일 뿐이다. 머리로 뭔가를 이해했다고 해서 행동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 그 자체이다. 몸을 통해 느끼고 파악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분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주변 사람들과도 분리되면서 도움받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만다.
..그러므로 몸을 버리고 사고할 수는 없다. 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결속감을 느껴보자. 혀로 음식의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부에 접촉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꼭 필요하다.

165p.
..몸이 포함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우선 체험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오감
• 인식 : 우리가 뭔가를 경험하는 동안 생각하는 것
• 움직임
• 신체 감각
• 감정

..내가 뭔가를 체험할 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때 이런 구성 요소를 떠올려본다면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고 기억도 더 오래갈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일을 동시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깊이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맛있는 식사를 할 때 동시에 텔레비전을 시청하면 음식의 맛, 식감, 향, 모양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어서 제대로 즐길 수 없다.

211p.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관계를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잃고 만다. 만약 인간에게 질렸다면 우선 동물을 사랑해보자. 그럴 수가 없다면 식물이나 정원을 사랑해보자. 그것도 안 된다면 책을 사랑해보자. 그 대상이 무엇이 됐든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225~226p.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안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몸의 경계에 대한 자각이 약하다. 경계에 대한 인지는 만 두 살 반까지 발달되는데 이 시기에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의 몸을 느끼면서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한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이 과정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 몸의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내면이 몸 밖 ‘우주‘에 머물러 있다. 경계를 느끼지 못하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섬세한 인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해서 양육자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인지 능력은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밖에 써버리고 나니 자신에게 쓸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아 스스로를 보호할 수가 없게 된다.

240~241p.
..물론 처음 심리치료를 시작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의식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삶의 질을 정하는 가장 첫 번째 기준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잘 의식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조절‘하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대감을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는데 이 행동 패턴이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림자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심리치료사가 내담자의 그림자 기억에까지 다가가기 위해서는 몸이 그 사람의 비밀을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몸을 통해 그 사람의 과거, 옛 상처와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체 지각 능력이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다.

250p.
...나의 좋은 부분뿐만 아니라 내가 불편해하는 부분도 발견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는 다른 나라를 발견하는 것이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