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p. ..이것은 나만의 착각일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길에서 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나나 개나 서로 바라보다 그대로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정말이지 뭔가를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들어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내가 개를 불러 세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개가 나에게 꼬리를 흔들어 보인다면, 둘 사이에는 위선적인 감정이, 서로가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잔꾀가 적잖이 생기고 만다. 그것도 나름대로 흐뭇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광경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가식적인 행위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정말로 개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53~54p. ..개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마찬가지였다. 가문이니 유서니 혈연 같은 것을 중요시하여 그것으로 결혼 상대를 고르는 사람을 많이 보지만, 그때마다 나는 "실없기는" 하고 만다. 그들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세상에서는 당당한 지식층으로 통하는 인물조차, 다른 사람 앞에서는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는 교양인조차, 어느 날 갑자기 그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잣대를 무서운 기세로 휘두르는 것이다. ‘혈통‘이니 뭐니 하는 것을 누가 보여 주면 지금까지의 평가를 180도 바꾸어 버리는 사람도 많다. 너무나 어리석은 탓이다. 그들에게는 그 당사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간파할 눈이 없다. 그래서 아무 상관도 없는 장식물의 질이나 수로 가늠하려고 한다. 그것은 타산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 등의 경우에는 불행한 결혼을 야기하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141~142p.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식욕이 채워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거니와, 식사를 할 때에 감사해 하거나 식사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를 만큼 기분 좋은 일로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은 공복을 느끼기 전에 음식이 위로 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날들이 영원히 계속되리라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욕망은 애석하게도 물욕에서 시작된다. 식욕은 저절로 한계가 그어지는 데 반해(아무리 부자라도 위는 하나니까) 물욕은 끝이 없는 것이다.
159p. ..그 무렵 나는 대인관계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완벽한 인간이 아닌 이상, 친구와 지인에게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 하나라도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으면 충분하고, 그 나머지는 아무리 어설퍼도 상관없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너무 점잔 빼는 유형의 사내와는 그다지 친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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