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p. ..이것이 우리 자신에 관한 가장 놀라운 점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쓰레기 더미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들과 동일한 불활성 성분들을 그냥 그러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점 말이다. 이전에 다른 저서에서도 했던 말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하련다.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이루는 원소들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기적이다.
21p. ..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인간도 아니었던 먼 조상들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기를. 그들 중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작고 털로 덮이고 굴속에서 살던 조상들도 많았다. 우리의 체제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30억 년에 걸친 진화적 비틀고 다듬기의 산물이다....
24p. ..피부는 진피라는 안쪽 층과 표피라는 바깥쪽 층으로 이루어진다. 표피의 가장 바깥 표면은 각질층인데, 전부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모두 죽은 것이라니 흥미롭다. 몸이 공기와 만나는 지점만 보면, 우리는 모두 시체이다....
84p. ..시각 입력이 시신경을 통해서 이를 처리하고 해석할 뇌로 전달되는 데에는 미미하지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시간—5분의 1초, 즉 약 200밀리초이다—이 걸린다. 5분의 1초는 빠른 반응이 요구될 때, 이를테면 다가오는 차를 피하거나 머리가 입을 타격을 피하려고 할 때에는 사소한 시간이 아니다. 이 시간 지연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뇌는 정말로 놀라운 일을 한다. 앞으로 5분의 1초 뒤에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를 끊임없이 예측하며, 그 예측이 바로 우리에게 현재라고 제시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결코 바로 이 순간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뒤의 세계를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평생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면서 보낸다.
114p. ...모든 표정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웃음이며, 그 점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웃음에 같은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회는 단 한곳도 없었다. 진정한 웃음은 지속 시간이 3분의 2초에서 4초 사이로 아주 짧다. 그것이 바로 계속 웃음을 짓고 있으면 위협적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진정한 웃음은 우리가 꾸며낼 수 없는 표정이다. 일찍이 1862년에 프랑스의 해부학자 G.-B. 뒤셴 드불로뉴는 진정한 자발적인 웃음이 양쪽 눈의 눈둘레근(orbicularis oculi muscle)의 수축을 수반하며, 이 근육은 우리가 따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기쁜 척할 때 입으로는 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눈을 반짝이게 할 수는 없다.
154p. ...입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오직 질감과 화학물질의 작용뿐이다. 이런 냄새도 맛도 없는 분자들을 파악하여 거기에 생생한 감각을 불어넣어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뇌이다. 브라우니는 악보이다. 그 악보를 교향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뇌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뇌가 경험하도록 허용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166p. ..치명적인 심장 기능 상실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끔찍한 죽음의 전조 증상을 갑작스럽게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이 전조 증상은 상당히 흔해서 의학 용어까지 붙어 있다. 앙고르 아니미(angor aimi)로, "영혼의 불안"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극소수는 (치명적인 사건에 행운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있다면) 운 좋게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시간에 사망한다. 나의 아버지는 1986년의 어느 날 밤에 잠자리에 드셨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는 한, 아무런 고통도 스트레스도 없이, 아니 시실상 자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남아시아의 흐몽족은 야간 돌연사 증후군(Sudden Unexpected Nocturnal Death Syndrome)에 유달리 취약하다. 자고 있는데 그냥 심장이 멈추는 증상이다. 부검을 해보면, 한결같이 심장이 지극히 정상이면서 건강한 것으로 나온다. 비대 심근병(hypertrophic cardiomyopathy)은 경기장에서 뛰던 운동선수를 갑작스럽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한쪽 심실이 비정상적으로 (그리고 거의 언제나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두꺼워져서 생기며, 미국에서 45세 미만인 사람들 중 연간 1만1,000명이 이 병으로 갑자기 사망한다.
363~364p. ..시교차상핵은 바로 옆에 있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완두콩만 한 구조인 솔방울샘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솔방울샘은 머리의 거의 한가운데에 있다. 중앙에 있고 하나뿐이기 때문에—뇌의 다른 구조들은 대개 쌍으로 있는 반면 솔방울샘은 하나이다—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거기에 영혼이 들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솔방울샘의 실제 기능은 멜라토닌을 생산하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뇌가 하루의 길이를 추적하도록 돕는 호르몬으로서, 1950년대에야 발견되었다. 따라서 솔방울샘은 주요 내분비샘 중에서 마지막으로 밝혀진 것이다. 멜라토닌이 수면과 정확히 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는 아직 덜 밝혀져 있다. 멜라토닌 농도는 저녁이 되면 높아지다가 한밤중에 최고에 달하므로, 졸음과 연관짓는 것이 논리적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밤에 가장 활동적인 야행성 동물들도 밤에 멜라토닌 농도가 증가한다. 따라서 멜라토닌은 졸음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솔방울샘은 낮/밤의 리듬만이 아니라, 계절 변화도 추적한다. 계절에 따라서 겨울잠을 자거나 번식을 하는 동물들에게는 그 일이 매우 중요하다. 계절 변화는 대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우리의 머리카락은 여름에 더 빨리 자란다.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는 명쾌하게 표현했다. "솔방울샘은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우리의 달력이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코끼리와 듀공을 비롯한 우리의 일부 동료 포유동물들은 솔방울샘이 없음에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442~443p. ...루이스 토머스는 1978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쓴 글에서, 자신이 의대생이었던 1930년대에는 결핵이 어떤 치료법도 듣지 않는 정말로 가망 없는 병이었다고 회고했다. 누구든 걸릴 수 있었고, 감염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사실상 전혀 없었다. 걸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자와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은 이 병이 사망하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삶이 거의 끝날 무렵에 찾아오는 스페스 프티시카(spes phthisica)라는 신기한 현상이었다. 환자가 갑작스럽게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면서, 때로 조금 고양되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최악의 징후였다. 스페스 프티시카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뜻했다."
476p. ..또다른 문제점은 예전에는 사망의 원인을 놀라울 만치 모호하고 상상력을 발휘한 용어로 적고는 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작가이자 여행가인 조지 보로가 1881년에 영국에서 사망했을 때, 사망 원인이 "자연의 부패"라고 적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누가 알겠는가? "신경열", "체액의 정체", "신 치아", "경악" 등 불분명하기 그지없는 온갖 것들이 사망원인이라고 적혔다....
495p. ..우리가 은퇴한 뒤에 사는 기간은 상당히 늘어났지만, 그 늘어난 노년에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일을 하는 기간은 늘어나지 않았다. 1945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은퇴한 뒤에 평균 약 8년을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1년에 태어난 사람은 은퇴한 뒤에 20년을 더 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고, 1998년에 태어난 사람은 현재 추세로 보면 아마도 35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퇴한 뒤에 먹고살 돈을 버는, 일하는 기간은 똑같이 대략 40년이다. 대다수 국가들은 몸이 편치 않고 수입도 없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부담해야 할 장기적인 비용 문제를 아직 직시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앞에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주 많은 문제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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