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한참 잘못 짚었다. 그런 마음을 먹을만큼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귀찮은 행위를 할 만큼 아버지와의 관계가 돈독하지도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애당초 가져본 적이 없거나 너무 일찍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미련을 품지 않는다.

..아버지는 동화 속의 새엄마가 ‘절대로‘ 없다고 단언했으나 ‘절대로‘만큼 폭력적인 말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동화가 아무리 가공의 이야기라도 덮어놓고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다. 시대와 문물이 변한대도 사람의 속성에 그리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는 제과점 남자의 정체를 몰랐을뿐더러 영문 흘림체로 적힌 가게 이름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 마침 헤이즐넛을 비롯하여 견과류 볶는 냄새가 코를 간질였을 뿐이다. 모든 강렬한 충동은 후각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빵 냄새, 돈 냄새, 욕망의 냄새, 증오의 냄새.

..그때 통제할 수 없이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이 눈물의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는 오래전에 내 옆에 있었던 무언가를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무얼 잊어버리거나 놓고 온 걸까. 그 애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느 평행우주 속에 살고 있어서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아이일까. 그 애뿐 아니라, 지금껏 내가 선택해오지 않았거나 거부해온 모든 요소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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