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
..아케미는 명함을 받아들고 그 빳빳한 네 모퉁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어보았다. 앗코 씨가 사소한 일에 동요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을 통해 온갖 사람과 접하기 때문에 사안을 여러 각도로 보는 것이다. 이타와에서 폐쇄된 세계밖에 모르는 아케미에게 나아갈 길은 한 가지이고, 그 길을 벗어나면 마지막,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녀처럼 될 수 있다면, 그러나 바라는 것조차 무리였다....

57p.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실제로 지금까지 파란 조명을 켜놓은 다른 노선에서도 투신 자살이 훨씬 줄었대. 파란 빛의 효과야. 그것도 이 세상의 진실 중 하나. 사람의 일생을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그런 별것 아닌, 한심하고, 사소하고, 없어도 아무도 곤란해 하지 않을 것들이지."

107~108p.
..그래. 이건 싸움이 아냐. 토론이야.
..부장을 나쁜 사람 취급하고 전근대적이라고 단정짓고 그 존재에 주눅들면서, 자신이 선량한 약자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부장은 진심으로 크리스마스는 화려하게 보내야 하는 날, 사치를 부리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는 나쁜 마음도 교만도 없다. 착각한 채 지금까지 온 것은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무도 그에게 의견을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뿐이다. 다른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회의인데. 회의가 가져야 할 모습인데. 이럴 때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서야. 부장을 묶고 있는 것, 부장을 가두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무역회사의 화려한 시절을 당신의 눈으로 보고 일조했다는 자부심이다. 그것은 필시 그의 핵核이다. 그것을 부정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미치코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최대한 듣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보기로 했다.

198p.
..한신 백화점을 나와 인파 사이를 누비며 사에는 차츰 기운이 났다. 할머니 말이 맞았다. 뭐든 먹으면 이 비참한 하루도 작은 여행이 된다. 관광할 기력은 없어도 시간과 식욕만은 있는 지금, 이 지하상가는 제격이었다. 꼬치 튀김에 오코노미야키에 어묵. 오사카의 명물이라는 명물이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전부 없었던 일로 하자고 생각했다.

211p.
..결국, 자신의 인생 최대의 불행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는 재미있고 웃긴 한 페이지일 뿐이다. 조금 전이었더라면 그 사실을 깨닫고 울컥하거나 비참했겠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되레 , 뭔가 유쾌하다.

211~212p.
..자리 하나를 둘러싸고 싸우는 것이 취업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거나 누군가를 제치는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일에만 신경 쓰느라, 자신이 골라야 할 의자의 크기나 색을 제대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할머니 곁에서 일하고 싶다. 가능하면 정해진 장소만 다니는 내근직. 자신이 내세우는 캐릭터는 ‘할머니 껌딱지 손녀.‘ 영업 포인트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 조건을 한정하는 것과 응석은 다르다. 자신을 알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과 포기도 역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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