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p. ...각각의 당인산 뼈대를 따라 달콤하게, 시큼하게. 그것이 내 본질적 자아의 레시피다. 나는 몽상 속에서도 존과 트루디를 하나로 섞는다—부모가 별거중인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나는 그들을, 이 기본 쌍을 재결합시켜 내 환경이 게놈에 합치되기를 갈망한다.
30p. ...내 예측이 틀리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그는 이중으로 실패할 것 같다. 어머니는 나약한 그를 계속 경멸할 것이고 그는 필요 이상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의 방문은 끝나지 않고조금씩 희미해져간다. 그는 공명하는 슬픔의 장을, 상상 속 모습을, 여전히 그의 의자를 차지한 채 실의에 잠긴 홀로그램을 서재에 남긴다.
54p. ..하지만 인생의 가장 큰 한계요 진실은 이것이다—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 그때, 거기가 아니다....
67~68p. ..오래전 나는 고통이 의식을 낳았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단순한 생명체는 심각한 손상을 피하기 위해 주관적 순환고리, 즉 감각 경험이라는 채찍과 회초리를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는 그저 경고의 빨간불만 있는 게 아니라—누가 거기서 그걸 보겠는가?—고통스러운 찌름과 쑤심, 욱신거림도 있다. 역경은 우리에게 의식을 강요했고, 우리가 불에 너무 가까이 갈 때, 무리하게 사랑할 때 그 의식이란 것이 작동해 우리를 깨문다. 그렇게 경험된 감각들은 자아 창조의 시작점이다....
104p. ...므시외 바르트가 말하기를, 권태는 희열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이고 인간은 기쁨의 해안에서 권태를 바라본다. 바로 그렇다. 현대 태아의 상태. 생각해보라. 태아가 하는 일이라곤 존재하고 성장하는 것뿐이고, 성장도 의식적인 행위라고 하긴 어렵다. 순수한 존재의 기쁨, 별다르지 않은 나날의 지루함, 연장된 희열은 곧 실존적 권태다. 여기 갇힌 시간이 감옥살이가 되어선 안 된다. 나는 여기서 고독의 특권과 사치를 누려야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말하지만 나는 영원히 이어지는 오르가슴을 떠올린다—그 절정의 영역에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
193p. ...생물학은 운명이고, 운명은 숫자로 표시되며, 이 경우 이진법이다. 절망적일 정도로 단순했다. 모든 출생의 핵심에 있는 이상한 필수 요건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것이냐—저것이냐. 그외에는 없다. 눈부신 출생의 순간 아무도 사람이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딸이다, 아들이다, 라고 외친다....
260p. ...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뒤에서 탯줄이 풀린다. 나는 앞으로, 밖으로 나아간다. 냉혹한 자연의 힘이 나를 찌부러뜨리려 한다. 내가 지나는 곳은 삼촌의 일부가 반대쪽에서 너무도 자주 드나들었던 그 구간이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날에 질이었던 것이 지금은 자랑스러운 산도, 나의 파나마운하고 나는 그보다 훨씬 크다. 아주 오래된 정보라는 화물을 싣고 위엄 있게 천천히 나아가는 위풍당당한 유전자의 배다. 뜨내기 남근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동안 나는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되고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지금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내 어머니다. 모든 어머니처럼 머리 크고 시끄러운 아기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비명을 지르는 내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