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p. ...경계인은 감정을 적절하게 분출하도록 해주는 응고 체계가 결여돼 있다. 일종의 감정 혈우병을 앓는 셈이다. 이들의 연약한 ‘피부‘를 찌르면 감정적 출혈이 멈추지 않아 영원히 고통받는다.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일은 낯선 경험이다.
66p. ..‘대상항상성‘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대상항상성이란 상대를 다양한 면을 지닌 인격체로 이해하면서도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일관적인 기준으로 연관해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한다. ..경계성에 갇힌 사람들은 광범위하게 지속되는 상호 소통이 아닌 가장 최근에 만난 모습을 토대로 상대방을 기억한다. 따라서 타인에 대해 예측 가능하고 지속적인 관점을 가질 수 없다. 마치 특정인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대하듯 반응한다.
81p. ..드물지만 자기 처벌이 좀 더 간접적인 경우도 있다. 경계인은 반복되는 ‘표면적인 사고quasi accidents‘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본인이 직접 잦은 싸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폭력을 휘둘렀다고 여겨서 싸움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150p. ..이는 경계인이 규칙적인 생활 방식에 적응하다 보니 이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과도한 음주나 자살 위협과 같은 극적인 제스처를 주기적으로 표출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경계인도 에너지나 기력이 줄어들어 빠르게 변하는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일부는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서든 대부분의 경계인은 치료 유무와 관계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진다. 실제로 대부분은 더 이상 아홉 가지 경계성 성격장애 측정 기준 중 다섯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므로 ‘치료된‘ 상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경계인과 인생을 함께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행동을 더 잘 용인하게 된다고 기대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반응도 예측할 수 있게 되므로 경계인을 대하기가 더 쉬워지고 그들도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91p. ..마조히즘은 경계인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주된 특질이다. 의존성과 고통이 결합돼 비슷한 고통인 ‘사랑의 상처‘를 끌어낸다. 경계성 환자가 어린아이라면 어머니나 주요 보호자와 성숙한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면서 고통과 혼란을 경험한다. 나중에는 배우자, 친구, 스승, 고용주, 성직자, 의사 등 다른 파트너와 이 혼란을 이어나간다. 비난과 학대는 경계인에게 가치 없는 자기 이미지를 강화해줄 뿐이다.
204p. ..사라진 아버지 증후군은 병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혼이나 사별로 고통받는 가족 안에서 종종 어머니는 이상적인 부모가 돼 보상하려는 심리를 보이므로 자녀의 모든 삶에 관여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가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런데 비록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노력하지만 여러 사례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녀가 된다. 아이는 아버지의 부재를 겪으면서 어머니와 공생하려는 집중력이 높아진다. 따라서 아이는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관점에 따라 자라고 영원히 어머니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환상을 가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하는 경향은 자녀의 성장과 개인화를 방해하고 개입하게 되므로 BPD의 씨앗을 뿌리는것과 마찬가지다.
230p. ..경계성 환자는 발전해나가면서 더 편안하고 믿을 만한 의존성에 정착한다. 그렇지만 치료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항상 관계 속에서 다시 혼란을 느낀다. 과거의 기능 방식에 대해 크게 슬퍼하며 앞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는 필요에 분개한다. 즉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이미 절반을 넘게 건너와 되돌아가는 것보다 끝까지 가서 쉬는 편이 낫다는 점을 알게 된 사람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288p. ..이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브레이크‘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사람의 정신적 브레이크는 기분이나 행동의 정점에서 조금씩 내려와 하강의 ‘중간 지점‘에 멈추게 해준다. 하지만 경계성 환자는 자신의 브레이크가 듣지 않을거라고 두려워하며 멈출 수 없다고 믿기에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점진적인 변화는 자동 반사라는 변화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경계성 환자는 어린아이가 ‘눈 깜박이기‘나 ‘웃기기‘ 같은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사 작용은 몇 년에 걸쳐 생성되는 것으로 의식적이고 동기가 부여된 노력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299p. ..경계인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나와 타인에 대해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태도다. ..경계인은 완벽하게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자신을 A+ 아니면 F로 평가한다. 또한 F로부터 배우기보다는 이를 주홍글씨로 새기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들은 자신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행동의 유형을 인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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