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p.
..독일에는 중세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여러 군데 있다. 뷔딩엔Buedingen, 이드슈타인ldstein, 겔렌하우젠Gelnhausen 등이다. 역에 내리면 중세의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작은 도시들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숙박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유럽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가까우니 꼭 한 번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이 도시들은 거리 자체가 역사 기념물이다. 이곳에는 마녀의 성, 마녀재판에 쓰였던 도구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대부분 힘없는 여인들이 이런 마녀의 성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당하다 한을 품고 떠나갔다. 특히 겔렌하우젠 마녀의 성에 있는 고문 기구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47p.
..‘우물에 독약 넣은 이‘라는 별칭은 14세기 중반 페스트가 전 유럽을 강타했을 때 붙여졌다. 유럽인은 그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에 유대인이 몰래 독약을 넣어서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오해로 인해 1349년 2월 2일부터 24일까지 독일 튀링에 주에 살던 수많은 유대인이 맞아죽었다.

63p.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한동안 남자 사이의 사랑을 동성애로 간주하지 않았다. 두 남자가 쌍을 이루어 살면 ‘선택 형제‘라고 불렀고, 교회의 축성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역사학자 프랑크 마이어에 의하면 동방교회에서는 이들이 죽으면 함께 묻어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197p.
..이 특별했던 십자군은 유사한 신분의 어린이들이 모였던 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들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높은 이상을 꿈꾸면서 방랑길에 올랐다. 물론 이들이 니콜라우스와 스테판의 계시에 속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 군집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냈다. 하나는 자발적인 행렬을 통해 새로운 대도시에 도달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젊은이들이 일으킨 거리 운동의 효시라는 점이다.

199p.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임을 어린이 십자군과 비교했을 때 둘 사이의 중요한 공통점은 무기가 없는 ‘맨손‘이라는 사실이다. 십자군 어른은 무기를 지녔지만 어린이 십자군은 몸에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 폭력 없는 순수하고 평화로운 종교적인 행군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 십자군은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의미로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가 제작되었고 베를린의 한 갤러리에서는 ‘어린이 십자군‘에 관련한 전시회도 열었다. 브레히트(1898~1956)는 1939년에 어린이 십자군에 대한 시를 쓰기도 했다. 이런 긍정적인 해석마저 없다면 그때 교활한 사기극에 속아서 군집을 이루고 행렬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노예의 나락으로 떨어진 어린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하지 않은가.

214p.
..그녀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허무하다.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여인이 권력의 맛을 알고 난 뒤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결국 아들에게 버림받아 쓸쓸한 말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른다. ‘여기다 싶을 때가 곧 거기를 떠날 때다. 이것이다 싶으면 곧 부정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잘 아는 중용中庸과 상통하는 의미이다. 마리 드 메디시스 역시 적절하게 권력을 맛보고 물러났더라면 초라한 말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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