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p. ..리셉션 겸 카페테리아는 모든 것이 반듯반듯하고 깔끔하다. 테이블보는 이중이고, 화분이 곳곳에 놓여 있는데 척 보기에도 손질이 잘되어 파릇파릇하다. 주위를 둘러보며 앉아 있으려니 새하얀 리넨이 깔린 쟁반에다 받침에 얹은 도기로 된 커피포트와 잔 받침에 엎어놓은 커피 잔, 자그마한 유리 피처에 담긴 주스와 유리잔, 접시에 냅킨을 깔고 얹은 일회용 잼과 버터, 따끈하게 데운 우유 포트, 햄치즈 샌드위치와 잘게 썬 빵들 그리고 토스터에서 빵을 집어낼 앙증맞은 집게까지 주신다. 나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잘 살지만 있으면 참 좋아한다.
177p. .."그리고 그때, 뭔가가 일어났어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죠. 내 직장과 내가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다른 나라에 그렇게 앉아 있는데, 어떤 느낌이 내게로 다가온 거예요. 뭔가를 기억해낸 것 같기도 했어요. 내가 한 번도 알았던 적 없지만 내내 기다려온 뭔가를. 하지만 난 그게 뭔지 몰랐어요. 내가 잊어버렸던 무엇일 수도 있겠죠. 아님 내가 평생을 그리워한 무엇일 수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는 거예요. 하지만 너무 슬픈 느낌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난 살아 있음을 느꼈거든요. 그래요. 살아 있음을요. ..그게 바로 내가 파리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에요. 또한 그 순간, 파리도 나와 사랑에 빠졌단 걸 느꼈죠."
195p. ..진실을 반영한다는 것은 실로 이와 같다. 수전 손택을 인용하면 ‘사진을 찍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것은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
206p. ..면 수건도 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습해서 수건이 잘 마르지 않고 늘 방 안에 수건이 널려 있는 것도 싫어서 배낭여행객의 필수품인 스포츠 타월을 쓰는데, 이 몸에 척척 붙는 고무 같은 질감은 끝내 적응이 안 된다. 여행에서 싫은 점 중 하나는 생활의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는 거다. 서울 내 집에서라면 샤워 후 선반에서 뽀송한 새 타월을 꺼내 머리를 닦고 까슬한 샤워 가운을 입겠지. 몸이 어느 정도 마르면 잘 다린 파자마로 갈아입을 테고, 그 모든 것에선 내가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날 것이다.
208p. ..그렇게 당신은, 점점 ‘전문화 과정‘을 거쳐, 당신만의 지도를 갖게 된다. 당신의 취향과 감정의 축척에 따라 왜곡된 지도를, 재조립된 도시나 마을을 갖게 되는 셈이다. 당신이 전문가가 되면 될수록 왜곡은 더 커진다. 지도의 어느 곳은 더 크게 부풀고 어느 곳은 휠 것이며 어느 곳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230p. ...잘 말린 속옷을 갖춰 입고 포장도로를 밟고 다니던 사람들이 팬티가 홈빡 젖도록 물세례를 받고는 깔깔 웃으며 "한 번 더! 한 번더!"를 외치는 걸 보니 아, 인간의 몸이란 어떤 감각을 그리워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길 원하는 수많은 감각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키고 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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