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3p.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관음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관음증이 다른 이들보다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부인‘이 되거나 ‘내부인 시선‘을 얻으려는 열망이 강하다....
52p. ...저널리즘을 위한 만남에는 정신분석 치료를 위한 만남처럼 퇴행 효과가 있는 듯하다. 글의 주인공은 기꺼이 작가의 아이가 돼 작가를 자기 요구를 다 들어주고,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어머니로 여기고, 그런 어머니가 자기에 관해 좋은 말만 하는 기사를 써주리라고 기대한다. 물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엄격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83p. ...사회는 한편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도덕성과 다른 한편으로 위험할 정도로 무질서한 관대함의 두 극단 사이를 암묵적 합의를 통해 중개한다. 그 합의 덕분에 우리는 조용하고 신중한 조건을 지키며 매우 엄격한 도덕 규칙을 위반할 수 있다. 위선은 인간의 실수를 허용하고 겉보기에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질서와 쾌락의 요구를 조화시킴으로써 사회가 계속해서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다....
135p. ...앞서 나는 맥도널드가 페리 스미스나 조 굴드처럼 특유의 자기 창조를 통해 작가의 작업을 상당 부분 대신 해주는 논픽션 장르의 ‘타고난 주인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삶에서 위대한 논픽션 작품으로의 변신 과정에 꼭 필요한 핵심 요소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주인공에게 근본적인 애착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변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 굴드와 페리 스미스는 실제로 지루하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괴짜에 불과하지만, 논픽션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흥미로운 인물로 변신할 수 있다. 그러나 맥도널드한테는 그런 야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고,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138~139p. ...내가 키일러의 파란색 바인더에서 알게 된 ‘인터뷰 대상의 진실‘은 정신분석가들이 말하는 ‘환자의 진실‘과 비슷했다. 그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과 상관없이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다. 정신분석가를 다른 정신분석가로 대체해도 아무 문제 없듯이 기자도 마찬가지다. 내 맥기니스와 키일러의 맥기니스는 같은 사람이었고, 내 맥도널드와 키일러의 맥도널드와 맥기니스의 맥도널드도 같은 사람이었다.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환자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대상은 작가와의 관계를 압도하고 주도한다. 정신분석가가 환자를 창조할 수 없듯이 기자도 인터뷰 대상을 창조하지 못한다....
170~171p. ...문학작품 속의 인물은 현실의 인간보다 포괄적이고 관념적으로 묘사되고, 단순하고 일반적(혹은 앞서 말했듯이 ‘신화적‘)이지만, 그 초자연적인 생생함은 명백한 불변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반면에 현실 속 인간은 소설 속 인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까다로워서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워 보인다. 정신분석 치료는 신경증 환자가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흥미롭지 않을 자유‘를 환자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환자가 스스로 자기 존재를 문학적으로 구축한 구조를 허물고 환자가 사로잡힌 정교하고 예술적인 양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정신분석 행위가 환자를 하나의 소설에서 다른 소설로, 예를 들어 고딕 낭만주의 소설에서 가족을 배경으로 한 희극으로 옮겨 가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부 정신분석가도 포함한다)도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가에게 치료를 받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프로이트의 작업이 그보다 훨씬 더 과격하다는 사실을 안다.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들은 종종 치료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한다. 정신분석 치료가 환자의 삶에서 소설화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해당하는, 중재되지 않은 개성과 독특함의 심연을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196p. ...서신 교환은 일종의 연애다. 그것은 작고 폐쇄된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고–봉투에 든 종이 한 장이 그것의 매개체이며 상징이다–미묘하지만 명백하게 에로티시즘에 물들어 있다.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때 상대의 편지를 기다리게 되고, 익숙한 봉투를 볼 때 감정이 점차 강렬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솔직히 인정하자면 서신 교환의 주된 즐거움은 받는 기쁨보다는 답하는 기쁨에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서신을 주고받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 안의 ‘편지 쓰는 사람‘이고, 편지가 오는 일이 중대한 사건이 되는 이유는 편지를 읽을 기회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쓸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199p. ...저널리즘에 진실성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인터뷰 대상의 눈먼 자아도취와 기자의 회의주의 사이의 긴장이다....
210p. ...독자는 소설가를 믿지 않을 상황에서도 논픽션 작가를 굳게 신뢰한다. 그런 만큼 논픽션 작가는 독자가 미리 관대함을 지불한 상품을 꼼꼼하게 완성해야 한다. 물론 순수하게 허구로만 이뤄진 책이 존재하지 않듯이 순수하게 사실만으로 이뤄진 책도 없다. 모든 소설이 현실에 의지하듯이 모든 논픽션은 예술에 의지한다. 소설가는 인간 공통의 경험을 든든한 기반으로 삼기 위해 상상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꿈은 제한되지 않은 상상력의 전형적인 예다. 그래서 꿈 이야기는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재미가 없다) 반면에 논픽션 작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문학의 서사적 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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