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은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로 유명한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이 『미식 예찬(Physiologie du gout)』에서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 돈이 많은 사람은 우아한 모습으로 먹이를 먹을 뿐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 대량 수입한 음식을 먹고 남기는 사람. 음식의 신이 있다면 틀림없이 전자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후자에게는 언젠가 배고픔과 목마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지 않을까? 모하메드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혀가 마비되어 그럴 수 없었다. ..판자 곤돌라는 다카의 축축한 공기 속을 빙빙 돌았고, 칙칙하게 줄지어 있는 집들은 몇 번이고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아에타족에게는 술을 마시는 습관도, 만드는 전통도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로분가 재정착지의 장로 마가아브 카바리크도 지금은 네스카페 팬이지만, 술 이야기가 나오자 ‘취해서 생각하는 것과 깨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니 이상하다’며 연신 화를 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내게는 참 신선한 논리로 들렸다.
..앞서가는 노인의 억센 목둘레를 의심의 눈초리로 더듬었다. 그것을 먹은 사람의 목 뒤쪽에 나타난다는 ‘녹색 둥근 고리’가 정말로 있는지 찾아보았다. ..어떤 흔적도 없었다. 사람 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그 고리 모양 빛에 관한 이야기는 다케다 다이준(武田泰淳)의 소설 『반짝이끼(ひかりごけ)』에서 읽었다.
..각 민족이 선조나 문화의 기억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이 음식이다. 그 때문에 ‘음식’과 관련된 차별은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게 내 생각이다. 냄새가 나서 야만인이라고 말한 사람이 외국인 주택을 불태워 없애려는 네오나치는 아니다. 하지만 네오나치의 싹이 되기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탄 채굴 현장에 다다르니 그곳은 아름다운 칠흑의 벽이었다. 좀 전의 공포는 잊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운모 같았다. 눈이 부실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검은색이 그렇게 밝은 색인 줄 미처 몰랐다. 이곳의 질 좋은 석탄이 ‘백합의 찬란함’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았다.
.."다들 와 있어요. 용기를 내야 해요." ..프레드가 머뭇거리는 나를 나무랐다. "위선을 괴로워할 여유 같은 건 없어요." 하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전에 김 할머니와 먹었을 때도 똑같은 인사를 받았다. 일본인은 이미 잊고 있는 식사 후 인사를 할머니들은 언제 어디서 익혔을까? ..나는 깨달았다. ..김 할머니도, 이 할머니도 맛의 기억을 담은 개인사를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날카롭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참함과 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세세하게는 역시 자기 자신만의 것이다. ..아마도 대충 한데 묶여서 언급되는 것에 지극히 사적 기억이 반발하기 때문에, 이들이 때때로 우울해지는 게 아닐까? 나는 할머니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쓸데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에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여행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기획했다. 사고의 화살 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고백건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가벼운 대인 기피증에 빠져 있었다. 정감의 상실이다. 외부 세계의 굴곡, 출렁임, 생명의 약동, 죽음과 죽음의 냄새, 격분, 살의, 비탄, 큰 재해……. 이런 압도적인 질감과 양감을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 마치 눈앞이 가로막혀 버리듯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내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업상 필요한 자료였고, 장악할 수 있는 수치였으며, 단조로운 정보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세계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감정을 똑같이 일정하게 그리고 무기질적인 기호로 바꿔치기했다고 말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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