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p.
..나는 사람들한테는 ‘가르쳐 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무지‘가 의외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136p.
..밤의 호화로운 세계에 빠져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K사장과의 달콤한 애프터도, L회장이나 다른 손님들과의 특별한 ‘상류사회 체험‘도 모두 샛길일 뿐이다. 여기에 머무는 순간 라스베이거스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릴 것이다.
..길 위에 올라선 자는 계속 걸어야 할 것이다. 안주하는 순간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146~147p.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빠짐없이 들었다.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 미나코는 방향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 더디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눈앞의 목표는 너무도 선명하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이후의 시간을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인생이란 바다는 목적이나 목표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한 항해를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신대륙을 찾아가는 범선은 타륜으로써 방향을 잡지만, 돛과 노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결국 미나코와 나는 각각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난 미나코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고 전율을 느꼈다. 나는 ‘죽음의 의식儀式‘으로서 라스베이거스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삶의 출발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의 목표와 계획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부러워하기조차 했다. 물론 그녀는 나의 라스베이거스 행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지만, 왠지 전혀 의미가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생각해 왔던 나‘를 훨씬 더 괜찮은 존재로 격상시켜 주었다.

156p.
.."너희들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아홉? 서른? 요즘 여자애들은 서른만 넘으면 나이 들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며? 웃기기 말라고 해. 인생은 더럽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참 남은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미터 경주인 줄 알고 전력질주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딱 한마디만 해줄게. 60 넘어서도 자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걸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내가 왜 이 나이 먹고서도 매일 술을 마시는지 알아? 빈 잔이 너무 허전해서 그래. 빈 잔에 술 말고 다른 재미를 담을 수 있다면 왜 구태여 이 쓴 걸 마시겠어?"

168p.
.."사실 처음엔 그런 꿈으로 일본에 왔어.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인도에 있을 때보다 훨씬 보수를 많이 받거든. 그러다 보니 자꾸 나 스스로 계획을 미루게 되더란 말이지. 미나코, 아마리 너희들을 만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어, 고향에 있을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만찬을 계기로 다시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169p.
..그래도 난 그 목표에 모든 것을 걸었다. 비록 평생의 꿈은 찾지 못했지만, 이 정도 목표만을 위해서라도 전력을 쏟아붓고 싶었다. 나 자신을 한계선까지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살고 싶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171p.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뒤집어진 한 장의 카드를 놓고 거액의 베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그 초긴장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카지노에서의 매순간을 진지한 승부와 도전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죽을 때 분명 후회가 남거나, 아니면 죽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히 카지노를 파고들었다.

193p.
. 어쨌거나 상관없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내가 진짜 얻고자 하는 것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느낌‘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곳, 인간의 욕망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는 그 현장에서 나는 그 모든 느낌들을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각오까지 다 준비됐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의 베팅액은 ‘나‘라는 존재 자체인 셈이다.

197p.
..산책할 때 입을 옷을 비롯해서 런치, 디너, 호텔 바, 카지노 등상황과 장소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을 작정이었다. 옷만 제대로 입어 줘도 마음의 자세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그 분명한 진실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234p.
..나는 단 6일을 위해 1년을 살았고, 삶을 끝내기 위해 6일을 불태웠다. 그 끄트머리에서 ‘20대의 나‘는 죽고 30대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일‘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늘의 연속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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