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병이란 게 그런 식으로 오는 게 아녜요. 쌩쌩하게 활동하다가 한 번에 죽을병이 오는 게 아니라구요." .."네?" .."여기저기, 조금씩 조금씩 아파요. 만성적인 병이 늘어요. 병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이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당장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었다. 이 병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 여행’ 대신, 살기로 했다.
..‘난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는 초탈의식과 ‘하지만 심미안은 있다구’ 하는 우월의식이 머릿속에서 맞부딪쳐 요란스럽게 깨진다.
..PT를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운동하는 시간은 45분이었다. 여기에 체육관 오가는 시간, 씻는 시간을 다 더해 하루 한 시간 남짓 내는 것도 솔직히 아까웠다. 그렇다고 24시간을 뭐 그리 알차게 채우는 것도 아니지만, 운동 ‘따위’에 한 시간을 선뜻 내기가 아까웠다. 머리 쓰는 시간은 귀하게 여기고 몸 쓰는 시간은 하찮게 여기는 건 내가 받아온 교육과 사회체계가 가르친 고약한 습성이란 것을, 역시 머리로만 인정하면서 현실에서 여간해선 고치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노동 환경, 불안한 노동 환경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린 왕자와 여우 사이의 ‘길들여짐’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나이스와 여러 트레이너들을 보면서 계몽주의 시대에 『백과전서』를 편찬한 이들의 관점이 떠올랐다. 백과전서파는 암묵적인 지식과 생동감 넘치는 활력을 예찬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도 무슨 일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암묵적 지식이다. 보고 들은 것과 실제로 해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몸소 경험하여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배움이었다.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의 변화를 같이 하는 것,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기도 존중하는 의식을 키워가는 것, 그것이 배움이었다.
...아무튼 깍두기인 내가 플레이를 잘 못한 탓에 점수를 잃어도 나를 타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양쪽 편에서 골고루 못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실점하는 건 그냥 규칙의 일부로, 게임의 일부로 알았다. 깍두기는 시합과 경쟁을 즐기면서 동시에 나 같은 아이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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