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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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딸'을 머릿속에 그렸다. 핏대를 세워 엄마에게 따박따박 대답하는 딸, 레인과 꼭 껴안고 있는 그린,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연설자, 부당하다고 소리치는 대학 시간 강사, 기자의 무례함에 솔직함으로 맞서는 인터뷰이. 이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에서 이 사람은 언제나 엄마에게 '딸애'라고 불렸고 이 '딸애'는 '그 애'에게 '그린'이라고 불렸으므로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드러난 딸은 언제나 한 번쯤 누군가를 투과해서 나온 사람. 그런 것이 되는 것을 그린은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린의 엄마가 '성 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 자체로 마음 깊이 타격을 입은 것과는 달리, 그린은 그런 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단어의 무게를 '전단지를 가리키며 이 단어가 바로 나라고 소리치면서' 벗어던진다. 멋졌고 아팠다.

이 소설을 성 소수자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퀴어 문학을 퀴어로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퀴어됨에서 벗어나는 다음 발판 역시 이야기 속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을 평범함에 관한 서사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평범함'이란 '엄마'가 '딸애'에게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다고 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의 '평범함'을 뜻한다. 지난 학기에 잠깐 들었던 여성과 문학 수업의 첫 시간에 교수님은 이 수업의 첫 시간마다 몇 년째 물어보고 있는 질문이 세 가지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 일을 할 것인가? 두 번째, 결혼을 할 것인가? 세 번째, 아이를 낳을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는 거의 모두에 해당할 정도로 긍정의 비율이 높아졌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은 여학생의 경우 절반으로 뚝 떨어졌으며,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더 적은 수의 여학생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빠른 변화라며, 이제 독일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독일에서 유학한 교수님은 말씀하시면서 '개인주의'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다름에 대한 반발은 개인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뿌리 깊은 공동체주의라는 것에서 온 걸지도 모른다. 마치 이 소설의 '엄마'가 집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순식간에 타인의 변화를 눈치채고 떠드는 교회 사람들처럼, 모두가 모두에게 가십거리로 소비할 정도의 관심만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 그런 게 평균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 하는 것, 모두가 비슷해야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모나거나 튀면 안 되니까, 그런 걸 경계하기 위해 발달해온 공동의 감각.

이 소설에 나오는 '나', 즉 '엄마'는 양면적인 존재다. 왜 사람들은 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라는 물음과 왜 젠/딸애는 자신과 무관한 일에 이렇게 신경을 쏟고 자기의 삶을 허비하는가, 라는 물음이 내부에 공존한다는 건 모순이다. 그 모순으로 인해 나는 '엄마'가 '딸애'를 이해할 가느다란 가능성을 본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점점 그런 모순을 자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소설이 나는 너를 이해해, 따위의 말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건 거짓이니까. 김혜진 작가는 작가의 말에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썼다. 동의한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말할 수 없다. 함부로 말하거나 섣불리 이해했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어설픈 공감이나 위로는 아니었다. 이것은 작가가 말했듯,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마음에서 나온, 다짐의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p.s. 두 번째 읽으니 이 세상의 엄마들이 얼만큼 닮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다들 얼마간 반짝임을 잃고 서로서로 닮아간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 걸 타협과 체념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런 게 사회화라면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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