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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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복절이 지나갔다.

광복절이면 TV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인해 먼 타국으로 떠나

평생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고향에서의 삶과 추억이 남아있는 1세대를 넘어

이제는 많은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들의 후손들은 우리에게 외국인같이 느껴진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며 낳은 혼혈,

부모에게 배운 한국말로 몇 개의 단어를

더듬더듬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름도 외모도 전혀 한국인처럼 느껴지지 않고

이들 스스로도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할까,

우리나라를 고국으로 생각할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약간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도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부모님 혹은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하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이들도,

어떤 이는 원망 섞인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은

낯설지만 마음 한편에 묵직한 무게감으로

흐릿한 잔상처럼 남았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든 쉽게 오갈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싶지만

해방을 맞고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또 가족을 잃기도 한 이들의 사연을

미처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시 빛을 찾았다는 의미를 가진 광복절.

평온한 일상이 당연하고 익숙한 우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픔과 한으로 맺힌

마음이 남아있기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떠나

평생을 어디에 속하지 못한 채 떠돈

사할린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는

그의 전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포함해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으로,

지배 국가가 여러 번 바뀌며 ‘나’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고충에 대해 담아냈다.


책은 아직 해방 전인 1943년,

고향인 다래울을 떠나 사할린(화태)에

강제징용된 아버지 곁으로 가는

단옥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본이 조선에 시행한

국가 총동원법의 일환인 줄도 모른 채

그저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돈을 벌기 위해

먼 타국의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

사람대우도, 제대로 품삯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묵묵히 감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탄광촌의 노동자들에게

가족들을 현지로 데려올 수 있는 길이 열리며

단옥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화태로 먼 길을 떠나게 된다.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고향 집에 가족 몇은 남기도 했는데,

그것이 평생의 이별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열흘이 넘게 걸려 화태에 이르지만,

가족이 함께한다는 행복도 잠시

조선인, 일본인, 소련인이 뒤섞여 살아가는

그곳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고국에서 일본인들에게 받던 핍박은

지배체제가 바뀜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렸고,

그 사이에서 화태의 1세대 사람들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소련인도 아닌

어디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생길까 봐

손해를 보고 제약을 받으면서도

기어코 현지의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채

무국적자로 살아온 한인들이었는데


해방이 되며 이제는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고국이거늘

책임소재를 일본이나 타국에 돌리며

이들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돌아갈 길이 끊긴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할린 1세대들은 그저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매일을 이어갔고, 그렇게 역사 속에 사라졌다.


화태에서 이들의 삶, 서로의 관계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뒤엉켜 있었다.

나라를 빼앗은 일본이지만

화태에서 만난 일본인은 시간을 넘어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러시아 현지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같은 민족이니까

고국에 돌아갈 때 낫지 않을까 싶어

북한의 국적을 선택한 이들도 생겼다.


한 가족 내에서도, 하다못해 부부 사이

혹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다른 국적이 뒤섞이게 된 것이다.


그저 그들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앞에서

매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가족과의 이별과 퍽퍽한 현실 앞에서

슬픔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 슬픔의 틈새에서도

인간다움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

단옥과 가족들, 사할린 1세대의 인생을 곱씹으니

사실상 ‘외국인’과 다를 바 없다 여기며

그들이 고국을 이제는 그리워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고 싶을 거라 쉽게 생각했던

지난날이 반성되기도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코 채소를 심고,

밭을 일구며 고국의 음식을 해 먹은 사람들.

나라가 자신들을 저버렸음에도

끝까지 국적을, 나라를 버리지 않고

희망을 붙들고 있던 이들의 고통과 실망을

과연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해방이 되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라는 한 문장으로 그들의 삶을 요약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그곳이 더 편하고 익숙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 좋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외면 속에서

갈 수 없는 조국과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그곳에서 만난 이웃과 새로운 가족이 되어

연대하고 살아간 그들의 삶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들의 애달픈 삶은 1세대에만 그치지 않고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조국으로부터 받은 배신과 비관을 안고

기약되지 않은 미래로 삶이 이어졌다.


일본, 소련, 조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그 틈새 속 행복의 조각을 찾아낸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이 존경스럽고

또 아름답게 빛나는 듯하다.


사회가 구분 지어 놓은 체제와 경계 속에서

그저 살아내고자 한 그들의 분투,

흔들리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삶을

이제라도 헤아리고 미안해하며

또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곳으로 떠나가게 된 개개인의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그저 그네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연루되어 있는 하나의 역사로,

나와 우리와 사회와 나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 사람의 생애가 아니라

시대를 설명하는 역사 그 자체였던

단옥의 삶이 참 고맙고 귀하다.


나처럼 사할린 1세대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 역시

책을 통해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를,

이 슬픈 민족사에 대해 책임을 외면한

국가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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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결혼하는 법
소피 어윈 지음, 이미영 옮김 / 마시멜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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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원작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그 열풍이 계속 이어지며 〈브리저튼〉과 같이

1800년대 초 영국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상류층 귀적 사회와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리젠시 로맨스가 소설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아직 신분이 남아있는 사회,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감정이 자유롭게 오간

그 시절의 무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상류층 귀족 사이의 사랑 이야기와

그들 사이의 갈등을 다룬 소설은

현대물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소피 어윈의 소설 《부자와 결혼하는 법》도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신분 상승을 노리며 사교계에 입성해

생존 위기에 내몰린 집안과 동생들을 거두고자

고군분투를 하는 미스 탤벗,

키티의 이야기를 담았다.


엄청난 대지주인 정혼자가 집안의 빚을

모두 갚아줄 거라 믿고 있던 키티에게

갑작스러운 그의 파혼 통보는

단순한 배신이나 이별을 넘어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면서

남은 것이라고는 집 한 채뿐,

이마저도 빚이 한가득 남아 있어서

이를 갚지 못하면 집도 넘어가게 된다.


장녀인 키티의 아래로 동생만 셋,

아직 어린 동생들에게 현실의 퍽퍽함을

그리고 원치 않는 사람과의 결혼이나

노동으로 내몰리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는 돈 많은 남자를 찾아

결혼을 하며 집안을 지키고자 한다.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이모 도로시에게

런던 사교계 입성을 도와달라 요청하고,

키티와 동생 세실리는 남편감을 찾아

3개월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과연 그녀의 입맛에 맞는 남편감을 찾아,

집안의 빚을 갚고 평화를 쟁취할 수 있을까?


리젠시 로맨스의 핵심이라 하면

귀족을 중심으로 한 신분과 그들의 사교장이자

갈등과 사랑의 배경이 되는 파티장이다.

이를 배경으로 ‘속물’ 같지만

가족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따뜻한 키티와

그녀의 속셈을 눈치채 계획을 방해하는

방해꾼의 등장이 티격태격하는 갈등,

그리고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이끈다.


런던 사교계의 데뷔를 앞두고

동생과 산책을 나갔던 키티는

우연히 동생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급생

어밀리아와 그녀의 오빠 아치를 만나게 된다.


높은 신분의 그들을 보곤,

자신의 남편감으로 점찍은 키티는

일부러 넘어져 발목을 접질린 척하며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이 접근한다.


다소곳한 숙녀의 이미지,

예쁘게 치장한 키티의 모습에

계획대로 아치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키티에게 푹 빠진 아치는

어머니 레이디 래드클리프에게

그녀를 소개하려 하지만,

키티를 직접 만나본 어머니는

키티의 집안이 별 볼일 없음을 깨닫고

아들에게서 그녀를 떼어 놓고자

타지에 나가있는 큰아들 제임스를 불러들인다.


키티의 뻔한 속셈을 알아챈 제임스는

동생에게서 그녀를 떼어 놓고자 하고,

자신의 계획을 들키게 된 키티는

그에게 일종의 거래를 제안하게 되는데…


신분사회와 귀족, 사교계와 파티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많이 다뤄지지만

'알고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재미가 가득했다.


주인공이자 여동생만 셋인 장녀 키티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캐릭터로,

영리하고 실용적이며 계산적이지만

사랑하는 동생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마치 《작은 아씨들》의 둘째 조,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당찬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이와 반대로 동생 세실리는

언니와 정반대의 성격인 이성주의자,

독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이다.

지적 수준이 높지만 눈치가 없고,

사랑 없는 결혼을 계획하는 언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하는데

그럼에도 언니를 따라 사교계에 입성해

키티와는 다른 인상을 남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곳에 적응해간다.


너무도 다른 두 자매의 앞에

영국의 사교계는 어렵기만 하다.

이모의 도움을 받아 어찌저찌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꾸몄지만,

파티에서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게끔 만드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녀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남편감 후보,

계산기를 두드리고 연봉이나 재산을

짐작해가며 현실적으로 굴던 키티도

사교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군가와 자꾸 부딪치며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이제 누가 되었든 남편감을 결정해야만

집을 구할 수 있는 그때에

키티는 과감하게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누구보다 계산적인 그녀에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 터.


어쩌면 너무도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갈등 속에서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은

알고 봐도 재미있는 공식 같았다.


리젠시 시대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

파티장에 입고 가는 의상의 표현이나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인물들의

몰입력 있는 캐릭터들 덕분에

금세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부자 남편을 찾겠다는 목표로

사교계에 진출한다는 스토리는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제아무리 자기 자신의 능력만으로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고 싶어도

당시의 시대 분위기상으로는

교육을 받은 여자라고 해도

터무니없이 작은 돈만 벌 수 있기에

그 상황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결혼이 전부라는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 읽히기도 했고


그렇기에 그런 이해관계가 얽혀

귀족이든 아니든 결혼은 사랑보다는

투자나 협상, 파벌과 경쟁 사이에서

나에게 유리한 패를 ‘선택’하는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지 결혼을 기회로 삼고자

뻔한 선택을 내리지 않고,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손에 든 카드를 과감히 포기하고

용기 있게 행동한 키티의 결단력이

상대로 하여금 키티의 진면모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들게 하는 빠른 전개와

각기 다른 개성이 넘치는 등장인물 덕분에

영상화되어도 좋겠다는 기대가 든다.


〈브리저튼〉과 같은 리젠시 로맨스 시리즈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공감과 커다란 즐거움을

안겨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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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예술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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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함께 술을 마셔야 비로소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평상시 사회적 체면이나 이미지 때문에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인간관계일지라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긴장감이 해소되고 취기로 기분이 좋아지며

속마음을 편하게 터놓게 되는 것이다.


적당한 양의 음주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감정적이 되어

서로 싸움이 붙기도 하고,

때로 음주 운전이나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죽음에 이르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과 알코올을 겹쳐서 바라볼 때면

창작의 영감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과 예술, 특히 술과 문학은

오랜 동반자처럼 함께 해왔다.

알코올은 여러 작품에 안식처를 제공했고,

위로나 절망을 안기며 작가의 삶을 지배했다.


때로는 취기가 영감을 불러일으켜

걸작을 낳게 하거나 작가의 작업 방식을 바꿨고,

어떤 때에는 저자의 죽음을 앞당기며

무수한 걸작의 탄생을 가로막았을지 모른다.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의 《알코올과 예술가》는

음주와 금주를 넘나들었던 여러 시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창작의 촉매이자 중독과 파멸의 원인이 된

알코올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술과 예술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고전 텍스트에서 술은

맛있는 음식이나 관능과 나란히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취기는

신체의 균형과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하고 불안한 경험으로 변모했다.


이중 작가 보들레르는

특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제시된다.

이전의 문학사에서 술꾼은

대체로 어리석거나 악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보들레르는 술꾼의 심리와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이런 상투성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는 술이 예술가의 생활 양식뿐 아니라

소설의 형식과 문학적 인식에도 영향을 준

사례로 손꼽히기도 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살피고

스스로를 알고자 애쓰기 마련인데,

작가는 술에 취했을 때야말로

자기 내면에 침잠해 의지할 만한

감흥이나 믿음을 찾아

무한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식 탐험의 길잡이 역할을 한 취기는

작게에게는 특히 이성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글을 쓰게 하는 강력한 촉매제로서

기능했을 것이다.


책은 술에 기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을

단순한 일탈 사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창작 방식과 작품 세계가

알코올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취기를 동력으로 삼은 예술가들,

알코올의 기능과 예술에 미친 영향력을

간헐성 음주, 상습성 음주로 구분해

알코올의 다면성을 깊이 있게 살핀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와 그 일화는

알코올이 예술가들의 창작에 개입하는 방식이

각자에게 얼마나 달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하루에 6리터의 포도주를 마시며

《죽음의 병》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만취 상태에서 자신이 완전히 해체되는

끔찍한 추락의 과정을 느꼈다고 했지만,

그 작품은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결핍을 파고드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 밖에도 술 마신 다음날 오전에 그림을 그린

프랜시스 베이컨,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취한 흥분 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을 권한 잭 케루악 등

만취와 고통을 예술로 빚어낸 예술가들을 통해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

예술의 동력이 된 알코올을 만날 수 있었다.


이에 반하는 또 다른 축은 금주와 회복의 문제로,

예술적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알코올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다룬다.


중독과 금주의 반복은 삶의 파괴로 이어진다.

하지만 예술가라서 용인될 수 있다는 태도는

되려 술을 미화하거나 질병을 가볍게 보는

태도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술이 인간의 의식을

분열되고 와해된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에,

기존의 도덕적인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관점에서의 술은 창작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과 삶을 동시에 뒤흔드는

불안정한 힘으로 작용한다.


흔히들 알고 있는 알코올 중독의 폐해처럼,

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유발하며

자살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금주자를 단순히 술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창작 활동과 삶을 지속하기 위해

중독의 습관과 싸운 인물로 다뤄지는데,

그래서 책은 예술가와 술의 관계를

실제 삶의 고통과 선택의 문제로 끌어온다.


술이 예술적인 성취를 이뤄낸 사례뿐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된 사례,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술로부터 돌아서려 했던 이들의 투쟁을 통해

알코올을 예술적 이미지로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오늘날의 알코올은 예술적 영감이나

반항의 상징으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현대에는 술보다 더 강력한 환각제의 등장,

그리고 사회적인 인식 변화 속에서

술은 예술적인 신비보다는

중독이나 질병, 금주와 금단의 문제로

더 자주 이해되는 편이다.


책의 접근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옛 예술가들의 취기와 장작 이야기를

다시 읽고 해석하게 만들지만,

긍정 혹은 부정 등 한쪽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술에 기대어 나온 작품을 존중하되,

그 뒤에 남은 파괴와 고통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며

마냥 오해하기 쉬운 술과 예술에 대한 해석에

나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예술가의 걸작을 술의 효과로만 설명하지 않고,

알코올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얼마나 복잡하게 망가뜨리고 재구성했는지,

인간의 무의식과 창조성,

자기 파괴의 본능을 깊이 있게 해부하며

술과 인간, 그리고 예술 사이의 숨은 맥락을

파헤치고자 하는 책의 통찰을 통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예술가들은 술을 찾는가,

혹은 엄청난 절제로 예술에 임하는가

궁금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책이 그 호기심을 해결시켜 주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설하는 데 있어

인간의 취기와 욕망을 겹쳐 바라본

책의 시선이 어렵기도 했지만,

평상시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나에게

술을 찾는 이유, 술과 예술의 접점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기회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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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도쿄 - 개정증보판
임진아 지음 / 유유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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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매일같이 보는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낯선 나라로의 여행을 계획할 때면

'이왕에 간 김에' 하는 욕심이 생겨

SNS에서 유명하거나 좋다는 곳들을 추려

여행 일정에 꾸역꾸역 집어넣게 된다.


그렇게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떠나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변수는 생기기 마련.

낯선 타국, 잘 통하지 않는 대화로

더듬더듬 계획했던 장소들을 찾아가 봐도

어딘가는 줄이 너무 길어서,

혹은 영업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예상치 못하게 휴무로 문을 닫거나

기대만큼 감흥이 떨어져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한가득 피로가 쌓여 적당히 찾아간

숙소 근처의 작은 동네 식당이나 카페,

소소한 길거리의 상점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계획하지 않았기에 기대도, 실망도 없고

우연히 그곳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작은 포인트를 발견하면

어릴 적 보물 찾기에 성공했을 때처럼

가득 찬 행복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아직, 도쿄》라는 이름으로

언젠가 가보고 싶은 도쿄의 플레이스를

하나 둘 모아두었다가,

느릿느릿 자신만의 속도로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자신만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낸 임진아 작가.


관광책자나 누구나 알법한 핫 풀이나

관광 스폿이 아니라,

동네 서점, 지하철역의 오픈 식당,

혹은 애써 멀리 나가야 하는 전시 등

일반적인 여행의 테두리와는 다르지만


일상과 겹쳐진 듯 카페의 케이크 한 조각,

문구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펜이나 퍼즐,

사람 세 명이 겨우 들어갈 법한

상점에서의 시간을 기록한 작가의 여행기는

기존에 알고 있던 여행의 재미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키며

'나도 떠나보고 싶은 여행'을 꿈꾸게 했다.


책은 도쿄의 상점, 카페, 식당, 산책, 책방 등

다섯 개의 테마로 자신만의 여행 스폿을

찬찬하게 소개해나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문을 닫은 곳도,

잠시 휴업으로 쉬어가는 곳도 있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곳도 존재한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찬찬히

도쿄의 숨겨진 작은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니

'아직' 미처 겪지 못한 즐거움이 가득할

도쿄의 매력은 물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곳에 대한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일본 여행하면 많이 찾는 도시인 도쿄를

며칠만 다녀가는 여행지로서

'이곳에 오면 해야 할' 리스트를

바삐 쫓는 것이 아니라,

길을 둘러 멀리 나가는 번거로움을

부러 감수하는 수고스러움을 더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를 감동시키는 여행으로 만드는

남다른 시선의 이 기록들은

여행에 대한 두근거림을 생겨나게 했다.


나의 여행을 되짚어 보기만 해도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느라,

어떤 때에는 패키로 예약했기 때문에

궁금한 가게가 있어도 스쳐 지나가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때로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헤매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우연히 발견한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

평범한 가정식에 생맥주를 곁들이며

'이게 진짜 여행이지' 감탄하며

그 어떤 여행지에서의 기억보다

그때의 만족감이 더 큰 추억으로 남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몸을 움직여 내가 좋아하는 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작가의 용기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

혹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시야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때로는 혼자 도쿄의 곳곳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마음속의 감정에 집중하고

좋음이 확정된 곳에서

고요히 고여 그곳에 어우러지는 시간이

대단한 여행 스폿은 아닐지라도

그 어떤 것보다 진한 '도쿄의 맛'을

느끼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서는 꼭 무엇을 해야 한다,

여기에 들렀으면 이건 먹어야 한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현지인들의 생활에 나를 데려가는 것.

아쉬움이 남더라도 '아직' 남아있을

다음의 여행을 위해 때로 발걸음을 멈추는 것.


그런 순간순간의 여운,

현재에 충실해 도시를 구석구석 탐닉하는

작가의 '생활하는 듯'한 여행이

잔잔하지만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도쿄를 여행하게 된다면,

작가가 소개한 곳들 중 내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한 번쯤 꼭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꼭 도쿄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여행할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를 감동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소소한 다짐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이든 말하는 사람의 경험,

그의 생각이나 보고 들은 것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진다고 한다.


작가가 그려낸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내가 방문할 도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나조차 확실하게 모르는 나의 취향,

나만의 좋음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하고

또 이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을

꿈꾸게 하는 설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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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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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루잠. 깨었다가 다시 든 잠을 말한다.

이따금 선잠에 들었다가 깨었을 때면

몽롱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 보는 듯한 꿈속의 어떤 장면이

현실의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며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때로 현실 속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서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유튜브 〈덕자전성시대〉를 운영하는

유튜버 덕자가 본명인 박보미라는 이름으로

펼쳐낸 첫 소설인 《그루잠》은

책 제목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

'윤설'이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따라

모진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기록을 녹여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평상시 밝고 명랑한 모습의 덕자의

어떤 부분을 녹여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은 어두울 수 있는 삶 속에서도

그럼에도 희망과 선의를 잃지 않고

용서에 가닿는 주인공 윤설 자체가

덕자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소설은 자신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

누구에게도 축복받고 환영받지 못한 채

인생을 시작하게 된 설이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한창 축복받고 사랑받아야 할 탄생 앞에서도

'나 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은

그녀의 의도는 아니지만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삭막한 일상,

크게 모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주변인들과의 사이에서 이만큼 떨어져

'외계인'처럼 보이는 설이는

우연히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비슷한 친구를 만나 행복해지나 싶던 찰나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공기업에서

상사에게 당한 지속적인 괴롭힘과 성추행 등

일련의 사건에 휘몰리며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간 인생을 가지게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을 감싸줄 거라 믿었던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그녀를 집 밖으로 이끌었고,

직장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PC방에서 만난

든든하고 다정한 남자친구는

그녀가 그간 모은 돈 앞에 배신을 한다.


상처받은 마음과 빚만 남은 그녀에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인생은

이따금 따스함을 선사하기도 하며

그녀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데,


중간중간 자다 깨는 그루잠 속 펼쳐지는

아득한 꿈속의 세상은

마치 현실인 듯 아닌 듯 혼란스럽기만 하다.


책을 따라 윤설의 인생을 되짚다 보면

수많은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에도

그녀가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내몬

상대방을 절대 탓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고,

누군가를 믿거나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를 두렵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는 상처받은 마음을 복수로 대갚음하지 않고

침묵을 택하고, 그저 자신이 떠나는 것으로

하나씩 사건을 덮고 넘어간다.


물러터지고 유약한 사람,

착하다 못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윤설이 가진 '순수함'은 나약함에 그치지 않고

모진 세상이 자신을 밀어내도

다시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삶으로 발걸음을 더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사람임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세상에, 타인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쉽사리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그 마음을 대갚음하고자 어떤 형태로든

'악인'이 되길 망설이지 않는데,

설은 상대를 미워하는 데 애써 시간과

마음을 쏟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더 단단하게 일군 것이다.


그렇게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어른으로 자라,

나이가 든 장년층이 되기까지

설이의 인생은 계속 흐른다.


그녀의 인생을 통해 '선의'의 의미를

되짚는 걸까 싶은 찰나에

그루잠 사이사이 꿈처럼 느껴졌던

환상 속의 세계가 반전처럼 등장하며

그간 쌓아 올린 서사를 흔들고,

믿고 있던 진실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런 혼란스러운 결말은

잠에서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에 들었을 때,

혹은 짧은 잠을 끝내고 깨어났을 때의

멍한 기분처럼 유쾌하지 않은 찜찜함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에서도

선의의 마음으로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체념하고 그를 구원하며,

용서에 이르는 그녀의 매 순간의 선택은

상처 너머로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

따스한 기대를 남게 했다.


설이가 겪은 삶에서의 상처들은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마주할 법한 일들이다.

누군가는 그런 위기 앞에 포기하기도,

혹은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남은 인생을 괴롭게도 하는데


체념하고 무기력하게 도망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인간답게 선의와 용서를 택한 설의 선택이

우리에게 선의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게 하는 시간을 선사하였다.


유튜버의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차곡차곡 쌓아온 윤설의 서사가

그녀의 인생이 끝나고 난 뒤 한번,

에필로그와 부록을 통해 다시 한번 뒤집히며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어줘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 그려진 D.C. Da capo D.C. 다카포,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악보 기호처럼

다시 첫 장으로 이끄는 흡입력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냥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메마르고 건조한 현실 풍경 속에서

깊고 다정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이 와닿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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