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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피할 수 있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길을
부러 찾는 사람이 있을까?
영국 문학에서 중요한 입지를 가진 인물,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즘으로 치면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 입학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포기한 채 열악한 환경의 나라로 떠나
공무원 생활을 하는 셈이다.
아버지의 근무지로 인해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교육을 위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식민지 인도의 경찰 간부,
파리와 런던에서의 부랑자 생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 등
평생 남과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그의 유명한 저서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이 제목은
어떤 이념과 생각 그리고 현실이
그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는가를 살펴보는
그의 인생 연대기를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가운데 동명의 에세이를
타이틀로 한 이 책에서는
그가 평생 동안 써 내려간 에세이 가운데
엄선된 서른여 편의 글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인생을
제대로 마주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들 한다.
합리주의자이자 반파시스트,
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반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로 설명되는 조지 오웰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에
오히려 반대로 지극히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곤 했는데,
글을 통해 당대의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영국 노동당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며
지나치게 관료적으로 변하였다는 평가,
노동 계급을 대변하고,
또 국제주의적 관점을 지니면서도
과학적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등
독특한 그의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부랑자로 세상을 떠돌며 마주한
밑바닥의 삶에서 깨우친
'영국 노동자의 주인 근성'을 시작으로
자신에게 기대하는 시선을 외면하지 못해
코끼리에 총구를 겨누며 느낀
'가면을 쓴 꼭두각시 경찰'에 대한 회의,
헌책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마주한
손님들을 관찰하며 써 내려간 독설과 유머 등
그의 인생 시계를 따라 여기저기로 옮겨가며
그가 마주한 다양한 환경, 체감한 계급 등
때로는 재미와 위트로 어떤 페이지에서는
진지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질타로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탁월한 이해는 물론
어린 시절 침대에 오줌을 자주 싸는 통에
혼날까 봐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
자신을 향해 '부정적이다' 평하는 시선에
'그게 전부는 아닌데' 하듯
자신이 키워낸 장미 넝쿨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뿌듯함을 써 내려간 글,
아내를 잃고 남은 아들을 위해
글쓰기를 멈추고 오랜 시간을 쏟으며 애썼던
아버지로서의 모습까지
철저히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한 글이 많지만
자칫 무겁고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인생사 사이에서 만끽한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며
예술적인 서정성을 놓지 않은 이 글들은
'조지 오웰'이 어떤 사람인가,
그가 살아온 시대는 어떤 세상이었나를
깨우쳐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에 책 제목만 보고서는
그가 왜 쓰는가의 이유를 알기 위해
책장을 열심히 넘겼지만,
부랑자들을 수용하는 스파이크 생활이나
누군가를 죽이는 교수형 등의 경험이
'쓰는 것'과 무슨 연결고리가 있을까
곱씹어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책에서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듯
그의 인생 배경을 훑어가며 그 끝에 가서야
똑똑해 보이고 싶은,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해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미학적 열정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이유' 네 가지를 모두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글은 지극히 정치적이기도,
그래서 때로는 예술이나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고 차갑고 냉소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인생의 순간마다 남들이 예상하는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깨달은 생각을 펼쳐내었기에
더 살아있는 문장으로 실감 나게 와닿았고
그렇기에 그의 세상사에 대한 성찰은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파악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이해자로서
조지 오웰의 진면모를 실감했다.
단순히 한 번의 만남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헤아릴 수 없었듯,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다시 펼쳐보며
조지 오웰이 통찰한 세상,
그의 경험과 사유를
이해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대가 바뀌고 다양한 정치색으로
각자의 생각이 충돌하는 요즘,
오늘날에 적용해도 여전히 유효할
'두려움 없는 지식인' 조지 오웰의 통찰이
오랫동안 마음에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