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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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6월 초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최고기온이 33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질 거라며 폭염 관련 소식이 전해지고,

밖에 외출하면 벌써부터 지하철을 비롯해

각종 쇼핑몰, 상점에서도 에어컨을 가동하느라 바쁘다.


작년 2023년을 떠올리면

참 이상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봄에는 따뜻하다가 이틀 후에는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기도 하고,

기온이 급상승 급강하를 반복하며

과실수들의 꽃과 열매가 떨어지며

사과값이 금값이라 할 만큼 상승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36-38도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그야말로 살갗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에

떠올리기만 해도 고개를 절로 휘저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냈으니

그야말로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여름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지 싶다가도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전 세계를 긴장시키는 기후 이변이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나니

조금씩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구의 메시지를

너무 외면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한

2023년의 폭염을 예견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르포타주다.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기원과 실태를 그려낸 것으로

평균기온 섭씨 45도

생존불가 지대에서 살아가는 파키스탄 시민,

야외 노동 중 희생당한 멕시코인 노동자와

미국 옥수수 농장의 농부들,

그리고 수 십 명의 기후과학자부터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에 걸쳐 폭염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폭염은 더 이상 이상고온이 아니라 기후 위기이며,

이런 기후 위기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도

'이거 정말 큰일이네' 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혹은 이런 위기를

좀 더 유예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

읽는 내내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작년의 더위만 해도 그렇다.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으니 '에어컨을 틀자'

라는 일차원적인 생각만 했을 뿐

이런 생각과 에어컨을 트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에어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더위가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에 설치된 에어컨은 10억대 이상으로,

인구 7명 중 1명꼴로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 바깥에 있는 빈곤국, 빈곤층에게는

쉽게 꿈꾸고 누릴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폭염 시대에 서늘한 기온은

계급과 집값을 나누는 새로운 지표로 떠올랐다는

지적은 참 씁쓸하기만 하다.


비단 에어컨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이 벌어져

육상 동물들은 10년마다 20km씩 북상하고,

대서양 대구는 같은 기간 동안 160km,

산호마저도 매년 32km씩 북쪽으로 이동하며

따뜻해진 해류를 피해

지구적 기후 이주가 벌어지고 있고,

이런 현상은 동물뿐 만 아니라

해수면의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면

인간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은

공포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한참 팬데믹으로 우리 모두의 일상을 묶어두었던

코로나19 역시, 전염병 매개체로 지적되는

생명체의 서식지가 북상하며

인간의 서식지에 가까워져서 발생한 문제이기에

이것은 시작일 뿐 더위로 인해 다양하고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발생하리란 예측은

우리의 미래를 회색빛으로 그려지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벚꽃 모기, 사과값 폭등, 실내 온도 계급화,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 등

우리에게 닥친 〈폭염 살인〉의 수많은 사례를

접하다 보니 충격과 동시에

지금껏 살아온 나는 둘째 치더라도

남은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현상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까,

조금이라도 밝아진 미래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사후 약방문이지만 뭔가를 해야만 하겠다는

행동 의지가 샘솟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지구 열탕화, 폭염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고 말했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의 기온을 바꿀 수 있으며,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폭염 불감증'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기 위해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브랜딩 해서

우리가 미리 폭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인지도,

혹은 이런 행동이 과연 폭염 살인을 멈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 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극에 스키여행을 떠났던 저자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인간의 거주지 근처를

찾은 북극곰과 직면하게 된 순간,

'죽음 직전에 사형 집행이 연기된 죄인이

된 것 같았다'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지금의 이 현실을 만들어낸

폭염 살인의 방조자이자 공범임을

외면하고 부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이대로 '이미 너무 늦었으니 내 생 안에는

지구가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하기보다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 우리 스스로가

하나하나씩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석탄연료 사용을 줄이며 지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먹게끔 하는 것이

그가 이 책을 쓰고자 한 목적이 아닌가 싶다.


문제 인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결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면

점차 지구의 위기 앞에 '당장의 시원함'을 위해

에어컨을 우선 돌리기보다는

나와 가족과 세계와 지구를 위해 조금은 참고,

도시에 가득한 열기를 줄이고 식히기 위해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을 찾아

폭염 살인을 막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들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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