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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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그렇고 그런 날, 이를테면 가벼운 슬럼프에 빠진 것 같은 데 딱히 헤어날 의지도 없는 날, 누군가와 좀 멀어진 것 같은데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 사람이라거나 삶 같은 것이 나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날, 문득 이 말이 귀에 울렸다.
"뒤를 봐!"
얼룩진 눈과 마음을 닦고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슬픈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화를 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다정하게 손을 내밀며 나를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볼 수 없었던,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두고 온 것들, 가지지 않으려 했던 것들,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것들을 왜 돌아보나.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얻은 것들과 언젠가 잃어버린 것들의 의미를 영영 알 수 없으리라.
알 수 없어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삶이나 그 ‘어쩌지 못함‘을 알지 못한다면, 삶을 지속시킬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원하지 않아도 멀어지는 것이 사랑이지만 그 ’멀어짐‘에 대해 눈물을 바칠 수 없다면,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다.

이를테면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당신이 정말로 화를 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웬만한 일에는 불평하지 않는 당신이 정말로 힘들 어하는 일은 무엇인지.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는 당신을 흔드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일들 앞에서 당신이 끝내 지키고 싶은 것. 끝내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이를테면 굳게 닫힌 문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 문안에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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