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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라는 쿨~~한 제목의 에세이 저자 사노 요코.
저자는 1938년생으로 이미 유방암으로 사망한 상태이다.
작은 섬 나라인 일본에서 38년도 중국 다롄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을 보내고, 전쟁을 겪고 환향민으로 배를 타고 몇 달에 걸쳐 일본에 들어온 사람. 무뚝뚝하고 자기 고집있고 이쁘진 않지만 독립심강하고..그리고 젊은 나이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은 매우 특이한 이력의 사람이다. 단순한 이력 뿐 아니라 뿌리없는 사람 특유의 정서와 가치관, 전쟁과 기아를 겪은 사람(그러나 큰 트라우마는 남기지 않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뜩이나 가난히 베어있는 삶이 더 어려웠던 그래서 농사를 짓는 할머니들과 같은 삶의 자세가 베어있는
시니컬하고
게으른 아줌마 작가 사노 요코.
카모메식당의 무레요코씨와 성이 같고 혼자 사는 사람이란 점에서 그리고 둘 다 개성적인 에세이를 많이 썼다는 점이 자꾸 둘의 이미지를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무레요코씨는 일본에서 전쟁의 어려움을 겪었어도 저런 실향인의 정서는 없으며 매우매우 소녀같은 감성의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독신녀이고
사노요코는 이른 결혼과 이혼을 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강한 생활력과 다크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
말년에 쓴 에서이는 인생의 많은 일들을 겪고 자기자신과 싸우고 실망하고 견디면서 한 생을 살다 암을 선고 받고 오히려 편안히 자기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젊을 때 하지 않던 떼쓰기, 드라마 빠져들기등을 하며 잔잔하고 재미있는 분위기의 글이었다. 날카로운 통찰이 곳곳에 빛나는..
그런데 말년의 에세이들이 한국에 먼저 출간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다른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40대에 쓴 이 책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대로"는 마냥 편안한 에세이는 아니다. 글이야 뭐 워낙 어렵지 않게 쓰는 사람이니 가독성은 좋은데... 외롭고 고독하고 슬프다. 춥다.
각기 다른 시기에 띄엄띄엄 쓴 글인데도 또 쓴 나라도 입장도 다른데도....현재와 유년시절을 넘나들며 꺼낸 기억들과 경험은 어찌 이리 추운지...
베를린 하숙집 할머니(구두쇠에 고집스럽고 가족들과 완전히 단절된 정서를 가지고 있는)는 작가의 그런 면을 꿰뚫어 본다. 본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기때문에..
"슈바르츠 헤르트"라고 말하며 작가의 가슴과 본인의 가슴에 번갈아 손을 얹는다. "까만 마음"
악한 마음과는 다른 것이다. 까만 마음. 유전적으로 태생적으로 까만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작가는 그 치고는 꽤 건강한 삶을 살고 간 것으로 보인다. 뭐 일본의 국운이 나쁘지 않았던 시대의 흐름덕도 있고.
뭐 에세이에서 큰 교훈을 얻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읽으면서 용기를 얻게 된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현실에 계속 직면해야 상상력이 생겨나는 거라고 나는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기쁘고 슬펐던 생활을 빼면 머릿속에 상상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그녀의 마음이 쓸쓸하면서도 격하게 공감하는 요즘이다.
나도 상상력으로 키워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