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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무엇인가
최갑종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12월
평점 :
칭의란 무엇인가?/최갑종/새물결플러스/고경태 편집위원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2016년에 한국 교회에서는 다양한 칭의 이해를 위한 세미나와 출판이 진행되었다. 2017년에 연구의 결실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흐름에 최갑종 교수도 자기 이해를 <칭의란 무엇인가>로 명확하게 제시했다. 학자가 자기 견해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은 독려할 일이며 후학들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 자기 길을 정립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 신학계에서 바울 이해에 큰 역할을 갖고 있는 최갑종 교수가 자기 견해를 명료하게 밝힌 것에 대해서 독자로서 찬사를 보낸다.
세계 교회는 이미 ‘탈루터주의(delutheranizing)’가 완료된 것으로 생각한다. 1970년대 새관점주의가 등장하면서 더욱 확실하게 정점을 찍고 새로운 기독교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까지 루터주의를 지키자는 견해와 수정, 보완하자는 견해 그리고 새롭게하자는 견해 등이 공존한다. 필자는 새관점 학파의 칭의 전개는 루터의 칭의론을 완전히 탈피한 것으로 생각한다.
최갑종 교수는 톰 라이트의 <칭의를 말하다>와 김세윤의 <칭의와 성화>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칭의 이해를 전개했다. 그럼에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최갑종이 이해하는 칭의 이해를 탐구할 수 있다. 최갑종은 저술 목적을 한국교회가 겪는 칭의 이해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것으로 밝혔다. 독자로서 혼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신학계보를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을 제안한다. 최 교수처럼 ‘두 견해를 잘 조화시킨 제언’으로는 혼란을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견이 명료하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할 수 있다. 최갑종의 견해가 세계적이고 한국적인 결정은 아니며, 연구자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인지해서, 독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몫이 있다.
최갑종은 샌더스의 유대교적 재구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자세를 제시하기 때문에 새관점 학파 라인이 아님을 제시한다(53쪽). 그러나 바울의 다메섹 사건에 대해서 복음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하지만, 이방선교까지 연결하는 형태로 김세윤 교수와 동일한 견해를 피력한다(72쪽). 그러나 칭의가 법정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구원론(법정적), 교회론, 선교적인 모든 면에서 개방시킨다. 새관점 학파의 견해까지 포용하는 것이다. 칭의의 근거는 매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95-168쪽). 그만큼 저자가 중요하게 배려하고 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칭의의 근거로 삼는다. 새관점의 하나님의 단일계획(single plan)이기 때문에 다르다. 칭의의 수단으로 ‘믿음’을 제시하는데,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기독론에 아닌 구원론으로 제시한 모호한 어휘를 사용했다(204쪽). 김세윤의 주제인 ‘칭의와 성화’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자들이 분리한 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김세윤의 주장(칭의와 성화가 동의어)을 반복한다. 전가 교리에 대해서는 법정적 이해가 아닌 연합 사상을 제시한다(253쪽). 그래서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6년을 달구었던 ‘영원한 칭의, 구원의 탈락가능성’에 대해서 김세윤의 주장을 반복한다.
최갑종의 견해 전체를 개략하면 김세윤의 사상을 중요하게 반복한다. 그러나 새관점 학파에서 주는 견해를 곳곳에 첨가해서 자기 견해를 구축했다. 독자가 김세윤과 새관점학파의 견해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매우 유익한 정보이다. 그러나 김세윤과 새관점학파, 종교개혁파의 칭의 이해 등이 명료하지 않다면, 최갑종의 견해를 칭의 이해의 정점으로 삼고 다른 견해들을 비교할 수 있다. 최갑종은 가기 견해를 명료하게 밝히는 것을 목표했기 때문이다. 최갑종의 견해는 종교개혁의 칭의 이해도 아니고, 김세윤의 칭의 이해도 아니고, 새관점 학파의 칭의 이해도 아닌, 자기 칭의 이해를 구축했다. 그리고 학자가 명료하게 제시하는 견해가 한국 교회에 세워지길 목표했다. 독자는 학자가 제시하는 견해를 바르게 습득하여 자기를 세울 수 있다.
독자는 칭의에 대해서, 자기 이해를 세우든지, 최갑종의 견해를 따르든지, 종교개혁의 칭의 이해, 김세윤, 새관점 학파의 견해를 따르면 된다. 종교개혁의 칭의 이해를 사랑하는 서평자로서, 독자가 자기 칭의 이해를 명료하게 세우는 과정에 최갑종의 칭의 이해 제시는 유익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자기 이해를 글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훈련’이다. 최갑종 교수가 제시하는 주제를 따라서 자기 이해를 글로 표현한다면 지도자에 대한 좋은 이해가 될 것이다. 필자는 목사가 자기 이해를 글과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해야 하고, 팔로우들은 그것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학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양심적이고 명료한 자기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최갑종은 자기 학문의 최정점에서 자기 과제를 한국교회에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이 과업은 한국 신학의 자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