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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슬픔의 틈의 틈새에서 피어난 삶들에 대하여.
1944년 여름,
탄광 갱이 무너져 태술이 죽고 정만이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만석에게 재징용 명령이 떨어졌다.
후쿠오카 탄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3년 전 사할린으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 이 섬까지 왔건만,
또다시 이별이었다.
열네 살 소녀 단옥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을.
더구나 훗날 자신이 그 섬에 평생 뿌리내리게 될 줄은.
시간은 잔인하리만치 정직하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사할린에서의 삶은 선명해진다.
단옥이라는 한국 이름,
타마코라는 일본 이름,
그리고 올가라는 러시아 이름.
그녀는 그 모든 이름이었다.
세 개의 바다를 건너며
세 개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 여자의 삶은,
사할린 한인 전체의 운명을 상징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선택'이다.
소련 국적을 받을 것인가 무국적자로 남을 것인가.
북한으로 갈 것인가 사할린에 남을 것인가.
영주귀국을 할 것인가 자식들 곁에 있을 것인가.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서 사할린 한인들은
무엇을 택하든 절반의 자신을 잃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었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을 잃은 날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틈새'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틈새,
세대와 세대 사이의 틈새,
기억과 망각 사이의 틈새.
사할린 한인들은 그 모든 틈새에서 살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듯,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낸 삶에 대한 존중과 공감,
그리고 진심 어린 위로"다.
슬픔의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생명력.
그것이 이 소설이 전하는 가장 뜨거운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