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아기 - 세계적 심리학자 폴 블룸의 인간 본성 탐구 아포리아 8
폴 블룸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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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인간다움은 속도가 아니라, 범주를 넓히는 태도에 있다.




아이는 선과 악, 진짜와 가짜를 너무 이르게 배운다. 우리는 본질을 감지하는 재능 덕에 빠르게 이해한다. 문제는 그 재능이 빠른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폴 블룸은 아기의 마음에서 출발해, 인간이 태생적으로 몸과 마음을 갈라 보는 직관과 보이지 않는 본질을 찾는 습관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 직관은 판단을 빠르게 만들고, 때로는 사람을 너무 빨리 가둔다.


이 직관은 예술의 판단에서도 드러난다. 아기는 사물에서 규칙을, 사람에게서 의도를 본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을 볼 때도 형태만이 아니라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곧장 읽으려 한다. 원본과 복제품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같은 물건도 누가 썼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질주의는 학습의 지름길이지만, 단번에 사람을 그런 부류로 올려놓는 낙인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인종이나 집단을 본질로 고정할 때 편견은 커진다.


도덕의 장에서도 속도는 문제가 된다. 공감은 빠르고, 이성은 느리다. 블룸은 이 둘이 만날 때 도덕의 원이 커진다고 본다. 가까운 이들에게만 쏠리던 연민이 공정성과 일반화를 통과하며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 확장은 우연히 자라지 않는다. 서로의 상호의존, 실제 접촉,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쌓이는 통찰이 가속 장치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혐오는 더 빠르다. 오염을 피하려는 감정이 사회적 대상과 만나면 한 사람 전체가 더러움으로 표기된다. 그래서 판단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 책은 기술보다 태도를 남긴다. 앞으로는 작품을 볼 때 형태와 행위를 오가듯, 사람을 볼 때도 사실과 의도를 오가며 보려 한다. 빠르게 이해하려 하기 보다 의도를 읽되, 판단은 늦추고, 범주는 가설로 두겠다. 그 느림으로 사람을 보겠다. AI가 속도를 책임지는 시대라면, 인간은 범주의 윤리를 책임져야 한다. 빠르게 묶지 않고, 넓게 여는 느림. 그 느림이야말로 범주를 넓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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