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집은 시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 같다. 시를 지을 때 함축적인 의미를 뜻하는 단어에 힘을 조금 빼고 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시로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의 산문집이라 조금은 감정을 실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내 감정은 잠시 놓아두고 아무런 대책 없이 책을 읽어 나갔다. 시에서 들려주었던 아름다움이 산문집에도 편지를 띄운 사람에게 소식이 전하듯 그렇게 여기저기에 담아놓았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초조감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 요즘, 양날의 칼날에 이 산문집은 그것을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잣대가 되어주었다. 책 제목처럼 느린 것이 주는 의미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사람들의 표정을 시인은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그 들춰내는 마음이 따뜻해서일까. 책장을 넘길수록 작지만 그 속에서 야무진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시인이 쓴 글들이 한편의 시처럼 느껴져 아름다운 얼굴 표정이 된다. 뽀얀 얼굴을 오래도록 햇빛에 그을려 볼이 불그레해진 느낌, 첫사랑을 만난 듯 수줍음을 보이며 찻잔을 드는 것처럼 이 산문집은 내 기억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온다. 싫지 않은 마음을 담아 또 책장을 넘긴다. 시인에게 부모님의 모습이 내 눈에 와 닿는다. 글은 이제 희미한 기억을 붙들고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아이에게 전달된다.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때서야 시인이 건네는 편지와 같은 산문집이 쌓아놓은 풍경이 아늑해짐을 느낀다. 혼자 있을 때 절절함이 더 큰 법인데, 이 느낌을 누구에게 전달하고 싶지만 이내 아늑한 느낌을 그냥 내 마음에 담기로 마음먹는다. 시에서 기억되었던 느낌과 산문집으로 만나는 시인의 모습, 두 모두가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그냥 좋다. 책 제목도 마음에 들고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도...... 어떤 대화의 화제꺼리처럼 아름다운 모습들이 풍겨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책을 읽는 장소가 어디인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계절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 책을 펼친다면 그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저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부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여운처럼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문다. 연한 부드러운 바람만 불면 모든 것이 부러울 것이 없겠다. 책 제목처럼 오늘은 조금 느리게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