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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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공지영. 그녀의 소설쓰기는 흰눈처럼 화사면서도 붉은 피처럼 어디서가 뺨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섬세하고 눈부신 비단실 같은 그녀의 신작 ‘도가니’를 읽었다. 처음 저녁밥이 되기 전에 아니 저녁을 먹기 전에 잠시 읽어둘 참이었다. 책상이 아닌 식탁위에 펼쳐 놓았던 ‘도가니’.
처음 몇 장을 넘기다가 아슬아슬한 그 무엇을 보게 되었다. 연재를 했던 것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묶어서였는지. 짤막한 장면들이 속도감 있게 읽혔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루함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밥이 다 되었다는 소리를 내게 전했지만 저녁을 먹는 것은 이제 뒷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안개가 뿌옇게 서려 있는 무진으로 떠나는 한 남자의 모습. 그 모습에는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그녀의 목소리 톤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은 없었다. 왜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살피는 눈치였다. 아니 자신의 모습에 걸맞지 않게 그에 부재를 이제야 실감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방금 걸려온 전화에 그저 태연했다. 아마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진으로 가는 길은 도시에서의 삶의 전부를 등에 이고 가는 고행의 길처럼 느껴진 건 어쩌면 시골이라는 곳. 그곳이 주는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입고 있던 옷의 색깔도, 유행도, 그렇다고 자신의 몸매에 어울리는 옷을 선택하는 것도, 이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에서 눈을 들어 제품을 고르고 그저 입는 일에만 열중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아닌 그, 강인호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밥을 앞에 놓았지만 내 눈은 강인호를 따라 무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일들에 조용히 숨을 죽였다. 강인호를 따라 나선 길. 길고 긴 여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억지로 여기에서 소설 읽기를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작가 공지영에게 무진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느낀 ‘도가니’에서의 모습은 약통 세 개를 손에 들고 입에 넣는 그런 느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약처럼 거짓과 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고 숲을 가로지를 수 없어 아우성치는 많은 사람들의 인내하는 모습들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진이 안고 있는 아픔은 어쩌면 작가 공지영이 그리고 싶었던 장소이면서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 선과 악, 그 두 가지의 내리막길은 아니었을지.
소설을 따라 가면서 자꾸 작가 공지영을 떠올려 보았던 것은 그녀가 그리고 있는 소설의 궤적의 그 중심에 어쩌면 이 소설이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재소설이었기에 독자가 함께 호흡을 했고 그녀의 소설 쓰기에도 작지만 커다란 영향을 가져왔으리라 생각된다.
강인호는 그의 몸에 들어온 약자의 편이 기꺼이 되어 주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놓지 않은 것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팽배하게 놓여 진 거짓의 공간은 그저 웃음으로 그 끝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갖게 했다.
처음 보았을 땐 아름다울 것 같던 무진의 모습이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푸르뎅뎅한 모습을 안고 있다면. 우린 어떤 자세로 그것을 헤쳐 나가야 할까
어쩌면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그 소용돌이에서 조금이라도 몸짓을 보이고 움직여서 보다 좋은 곳에서 우리가 뛰놀 수 있는 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고가의 제품을 품에 안기보다는 저가의 제품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가치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흐린 날은 아니지만 안개로 뿌연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 무진. 강인호는 그 속에서 작은 햇빛이었다. 그래서 그가 서 있던 곳은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