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을 보고




기계와 인간과의 전쟁

그러나 인간은 없었다




영화 시작부터 대단한 스케일의 CG와 엄청난 폭음이 내가 앉은 좌석을 뒤흔들었다. 그 폭격을 주도하는 주인공은 가족 대대로 스카이넷에 대항하여 싸운, 레지스탕스의 사령관 존 코너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힘을 합쳐 기계에 대항하여 싸우는 주요 인물은 인간 마커스이다.

마커스는 본래 스카이넷에 의하여 제조된 로봇이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실 철저히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기계. 그러나 나는 마커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기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로봇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레지스탕스를 돕는다. 그는 인간이 되기를 택했다. 자신이 프로그램화 된 로봇이라는 스카이넷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의 두개골을 절단하여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칩을 뇌에서 꺼내버린다. AI에서도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로봇이 있었고,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피노키오도 인간이 되기 위하여 갖은 고난을 겪었다. 영생이라는 인간의 궁극적 소망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앞 영화에서 스카이넷은 원래 거대한 컴퓨터였는데, 스스로 진화를 거듭한 끝에 모든 기계를 점령하는 막강한 위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소개된다. 기계가 스스로 진화한다 : 참 모순된 문장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기계가 창의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배운다. 그러나 기계가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인간만이 창의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미 유전자 기술을 사용하여 진화할 수 있는 컴퓨터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미래에 정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짐짓 두려워진다.

이 영화의 과학적 상상력이 나를 사로잡은 하나의 매력이었지만, 전쟁의 잔혹성, 비인간성 역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수단화되었다. 전투의 피해는 사상자 수로 가려지고,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레지스탕스마저 한 사람을 대우할 때 그가 전투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다르게 대우한다는 점이었다. 지위에 따라 그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뿐만 아니고, 그 사람의 목숨의 가격까지 매겨지는 것이다. 존 코너는 사령관으로서 레지스탕스 내부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에 있는데, 기계의 공격을 받아 심장이 회복 불능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마커스는 존 코너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심장을 내놓는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은 “정말 고맙다”라는 태도로 그 심장을 받아들여 존 코너를 살려낸다. 어찌하여 이런 설정을 한단 말인가! 제작가가 의도한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레지스탕스도 인간성이라고는 지니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존재로밖에 비추어지지 않았다. “존 코너는 레지스탕스의 마지막 희망이니까 반드시 살려야하고, 너는 원래 죽어야 했던 기계에 불과했던 존재니까 그를 위해 심장을 내놓는 게 당연해”라는 식의 논리이다. 마지막에 마커스는 죽어가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과 기계의 다른 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영혼과 심장을 지녔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커스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영혼을 지녔고, 누구보다도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누구보다도 확실한 인간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기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란 감정의 유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계가 극도로 발달하여 세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경우의 수를 데이터화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면 인간과 동등해진다는 말이 아닌가. 기준이 감정은 아닌 듯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영혼과 심장 역시 그 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세상에는 인공심장을 단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분명 인간이므로, 인간의 심장의 유무는 기계와 인간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영혼이 마지막 대답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영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죽음을 정복하지 않는 한 영원히 알 수 없는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단정 짓는 기준을 찾지 못하겠다. 우리가 지금 생산해 내고 있는 기계들이 어느 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상상이 완전히 허구적이지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간이 이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터미네이터>에서 스카이넷은 인간을 멸살하고 기계로만 가득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싸움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인가? 없다. 기계가 점령한 세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표일 뿐, 그 이후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더더구나 기계들은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연료를 끊임없이 공급받기 때문에 부족함 따위를 느끼지도 않는다. 반면, 인간은 살아야겠다는 욕구,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노력 등에 의하여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기계가 지구를 점령하는 날이 오더라도, 레지스탕스와 같이 끊임없이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면, 인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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