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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공포 스릴러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었다. 살인, 폭력, 납치, 은폐, 돈, 종합 병원, 불륜, 비오는 밤, 산장, 맨발로 뛰는 여자, 거기에 빙의와 절대로 잊지 않는 한 서린 여자 귀신까지. 프롤로그와 33장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 책은, 내내 영화의 신을 설명하는 성긴 설명서 같다. 문장은 짧고 인물들의 외모나 성격 묘사도 엉성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인물들이 생긴 모습이나 행동, 그들이 서 있는 장소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왜? 이런 장면들이 영화나 드라마, '괴담 시리즈' 특집 방송 등에서 재연 전문 배우들이 눈에 힘을 준 귀신 분장을 하고서 벌써 보여줬기 때문이다.   

효진과 영석은 부유한 집안의 30대 부부, 아이가 없는 것 말고는 완벽한 모습이지만, 영석은 내연의 애인 진연을 두고 있고, 10년전 끔찍한 범죄를 덮어둔 적이 있다. 아니, 이런 우연일 데가! 부인인 효진 역시 10년전 그 범죄 현장 부근에 있었고, 그녀의 가족사에서 비롯된, 다르지만  남편과 연결된 범죄에 한몫을 했다. 억울하게 숨을 - 하지만 질기게도 억울한 또 다른 목숨을 해하고 나서야 - 거둔 정희의 혼령은 10년 동안 칼을 갈고 갈아서 몸에 깃들어 살던 영매를 이끌어 효진, 영석과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짜잔하고 만나는 장소인 종합병원에는 기인이라 불릴만한 커플, 구신도와 한미선이 있다. 미선은 무당과는 절대로 다른 "채널러" 란다. 그녀는 라디오가 수신호를 잡듯 떠돌아 다니는 영적인 존재들을 감지하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희의 원혼을 막기위해 애쓰는 착한 엄마의 영혼이 억지로 미선에게 깃들면서 소설의 대립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다.   

마침내 10년전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이고, 구미호의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 과 엇비슷한 호령과 함께 CG 없이는 못보는 (아니, 못 읽는) 장면이 연출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해피 엔딩도 해피 엔딩이 되지 않고 오싹한 반전을 남긴다.  

거친 문장, 뻔한 캐릭터, 앞이 보이는 반전 탓에 공포 소설인데 별로 공포스럽지 않다. 캐릭터들이 딱딱한 가면을 쓰고 일정한 틀에 매달려서 한 장면 한 장면 따로 떼어서 연기한다. 섬세하게 인물들을 살려내고 행동과 심리를 묘사했더라면 - 거울 속의 눈동자를 노려보는 것 말고 - 더 무섭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귀신이 나와서 거울에 글씨를 쓰고 얼굴을 바꾸는 것 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배신을 하고 사람을 해하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 법이다. 여성을 파괴한 남성들, 하지만 모성으로 자기 아들을 지키려는 여성, 모성을 가질 수 없는 여성, 모성을 거래할 수 있는 여성, 그리고 이 모든 여성의 모순을 볼 수 있는 미래의 모성....이런걸까? 섬뜩해야할 장면들이 식상하고 "으아아아악!" 으로 되풀이되는 비명도 짜증나서 책을 덮는다. 하지만, 다행이다. 이제 여름도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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