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읽기 시작해서 12월에 끝냈다. 한 챕터가 너무 길기도 했고, 이미 영화 <아가씨>를 강한 인상으로 본 뒤이기도 해서 꼭 영화를 슬로우비디오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매우 지루했다. 2부의 중반까지는 그랬다. 그 때까지는 영화의 흐름과 꼭 같이 흘러가니까 그랬다. 그러나 이후 이 흐름은 격량에 빠져든다. 영화와는 완전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식민지 조선이 아니라 오롯이 런던의 뒷골목의 이야기로 남는다. 영화 속의 얼굴들이 지워지기 시작하면서 점심시간에도 책은 놓칠 수 없게 된다.2부의 중반까지 400페이지 가량을 읽는 데에 5개월이 걸렸고, 그 때까지 별점은 3점 아래였다. 이후 400페이지를 읽는 데에 이틀이 걸렸고, 나는 5개월간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을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죽음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순수하게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하는 이 소설은 ‘쾌감‘이 소설의 질, 문학성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증명하는 듯 하다. 각기 다채롭게 빛나는 많은 인물을 그리면서도 꼭 제 만큼의 애정을 담뿍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어떤 솜씨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가 본래 가진 좋은 마음 덕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따뜻하고 푹신한 기분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