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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말 ㅣ 한마음신서 6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한마음사 / 1997년 4월
평점 :
실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읽은 지 한달이 넘도록 미처 정리를 못했다. 책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읽고 나서 며칠 정도는 머리 속에 잔상이 남았는데 그걸 제대로 곱씹지를 못하고 넘겨버렸더니 기억 저편으로 잘도 사라져버렸다. 그다지 감동적인 책은 아니었다고 봐야겠다.
너무 유명한 책이고 너무 유명한 제목인 까닭에, 독자로서 뭔가 해석을 붙이기도 뭣하다. 지금과는 다른 용어들(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라든가)이 쓰이고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책이 아닌데도 낡은 듯한 느낌이 든다. 현실사회주의가 망한 뒤 20년이 아직 안 되었는데 그 사이의 변화는 너무나 빨라서 어느새 어떤 종류의 개념어들은 역사의 유물처럼 느껴지게 된 모양이다.
앞부분 읽으면서는 너무나 직선적 이분법적 단선적이고 또 오만한 듯해서 기분 나쁘다 못해 좀 우습기까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하면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이 커플로 묶여서 비판을 받곤 한다. 전에 <문명의 충돌> 읽을 때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헌팅턴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숱한(정말로 많은!) 글들을 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난 그래도 재밌었는데’ 이렇게 생각했었다. <역사의 종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고 또 너무나 많이 욕을 먹는데, 참 너무나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근대적 세계관에 각인된 하나의 역사는 끝났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영원한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후쿠야마는 헤겔이나 칸트니 ‘최후의 인간’이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헤겔을 모르니 말이다. 그러면서 후쿠야마는 왜 역사를 비관적으로 보냐며 낙관론을 주장한다.
인간에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헤겔 등등 누구누구의 말을 끌어들이면서 계급적 갈등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맑스류에 반대를 하는데, 읽다보면 재미있지만 너무 단순하다. 냉전 끝난 이후 이렇게 단순한 낙관론이 히트를 쳤었구나, 난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읽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여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설명한 부분 같이, 단편적이지만 재미난 분석들이 눈에 띄기는 했다. 뭐 아주 극악무도한 꼴통 보수의 책도 아니고, 약육강식을 외치는 현실주의자의 논리와도 좀 다르다. 오히려 요즘 프리드먼이 보여주는 글로벌리즘의 좀 예스런 버전 정도로 여겨졌다.